기억과 기록

by휴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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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언제나 조금씩 증발한다. 아무리 강렬했던 감정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색채를 잃고 희미한 잔상으로 남기 마련이다. 스크린 위로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가도록 차마 자리를 뜨지 못하게 만들었던 묵직한 영화의 여운도, 우연히 들른 사진전에서 한참을 서성이게 했던 뭉클함도, 어딘가에 단단히 붙잡아 두지 않으면 결국 시간의 틈새로 빠져나가 흩어지고 만다.



그래서 우리는 기록을 한다. 향이 좋은 따뜻한 플랫화이트 한 잔을 곁에 두고, 화면 위에서 깜빡이는 커서를 따라 방금 전까지 내 안을 맴돌던 상념들을 활자로 묶어두는 것이다. 조용히 새 글 쓰기 창을 열고 오늘 내 마음을 스쳐 지나간 문장과 장면들을 정성스레 타이핑하는 행위는, 단순히 일상을 나열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쉽게 바래고 휘발될 나의 찰나에게 영원히 머물 수 있는 작은 방 하나를 내어주는 일이다.



기억이 머릿속을 부유하는 모양 없는 구름이라면, 기록은 그 구름을 붙잡아 내 삶의 고스란한 질감으로 남게 하는 과정이다.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요란한 메신저 프로필은 텅 비워둘지언정, 나만의 공간에 차곡차곡 쌓아 올린 이 고요한 기록들만큼은 내가 어떤 이야기에 마음을 쏟았고 어떤 풍경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는지 가장 솔직하게 증명해 준다. 내 안을 통과해 간 수많은 감정들이 휘발되지 않도록, 나만의 언어로 꾹꾹 눌러 담은 그 흔적들은 오롯이 나를 지탱하는 뼈대가 된다.



시간은 멈출 수 없고 우리의 뇌는 많은 것을 잊어가겠지만, 정성껏 적어 내려간 문장들은 그날의 온도와 공기마저 머금은 채 그 자리에 남는다. 훗날 어느 날 문득 그 글들을 다시 꺼내어 읽을 때, 우리는 깨닫게 될 것이다. 희미해져 가는 기억의 뒷모습을 다정하게 안아준 것은 결국 내가 남긴 작은 기록들이었음을.

그러니 우리는 오늘도 무언가를 바라보고, 깊이 느끼고, 기꺼이 밑줄을 긋듯 적어 내려간다. 흐르지 않고 고이게 될 나만의 시간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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