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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식집사라는 호칭은 버겁지만, 그냥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칭할 수 있겠다. 아주 어렸을 때 부터 이름도 모를 씨앗을 발견하게 되면 집 화단이나 화분 모퉁이에 흙을 솔솔 파서 심어두고 씨앗이 싹을 틔울 때까지 정성을 쏟고는 했다.
지금도 그저 소소한 일상의 한 켠에 식물은 존재하고 있다. 그렇다고 식물에 대한 대단한 지식도, 부지런함과 노력을 쏟을 에너지도 없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저 최대한 손이 덜 가는 식물을 곁에 두고서 말라죽지 않도록 돌보는 일이다.
경험상 통상적으로 잘 알려진 그저 물을 덜 주어도 되는 식물이 키우기 쉬운 식물은 전혀 아니었다. 흔히 식물을 잘 키우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선인장도 말라 죽이는 사람이라며 놀리지만, 그것은 잘 모르고서 하는 이야기다. 선인장을 잘 자라게 하는 데에는 비단 물 뿐만이 아니라 온도, 습도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정착한 식물은 스킨답서스. 흔히 어느 가정에서나, 식당에서나 실내의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식물이다. 병해충에도 강하고, 실내에서도 잘 자라고 무엇보다 내가 본 어느 관엽식물보다도 강인한 생명력과 적응력을 지녔다. 거기에 공기 정화의 효과도 있으니 거의 육각형 식물에 가깝다.
약 3년 전 동네의 조그만 꽃집에서 스킨답서스 화분 하나를 구입했었다. 그 시절의 나는 무엇이든 조그만 초록의 생명체를 곁에 두고 싶다는 마음이 절실했다. 동물처럼 돌보거나 관리하기에 부담이 되지도 않으면서 그저 조용히 내 곁에 머물러주는 생명체. 그리고 아주 조금만 내가 신경을 써 주면 거침없이 내뿜는 초록의 생명력을 보여주는 존재. 내 기대에 부응하듯 그 작은 스킨답서스 화분은 내가 건네어주는 것들에 비해 미안할 정도로 쑥쑥 잘 자라났다. 새로운 가지에서 새로운 잎들이 자꾸만 솟아나고 뻗어나갔다. 그렇게 새로운 화분에 가지를 옮겨 심고, 더 큰 화분으로 분갈이를 하고, 그러기를 여러번. 지금은 그 처음의 스킨답서스가 무려 여섯개의 화분으로 나누어 자라나고 있다.
무지막지하게 무더웠던 이번 여름. 온라인 게임에 두고서 키우던 화분 두어개를 사정상 4주 정도 자리를 비우게 되어 스킨답서스 화분들을 미리 최대한 그늘에 옮겨두고 물을 뿌리까지 젖도록 듬뿍 준 다음 마음속으로 인사를 하고 나왔었다. 내가 없는 4주 동안, 잘 버틸 수 있지? 직사광선을 피해 최대한 잘 버틸 수 있도록 자리를 옮겨주고 나오는 순간, 밑도 끝도 없이 그렇게 믿었다. 나의 화분들은, 씩씩하게 잘 지내다가 나를 다시 맞이 해 줄거라고.
그렇게 4주간의 시간이 흐르고 다시 화분을 맞이하는 순간. 조금씩 시들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또 간간히 더 길어진 줄기 끝에서 새로운 잎들이 돋아난 모습을 마주했다. 믿겠다는 마음으로 헤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는 걱정과 불안감이 한순간에 말끔히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헤어지기 직전 물이 흥건할 정도로 축축했던 흙이, 여러갈래로 갈라져 손대면 부스러질 것 같은 모습으로 변해있는 모습에 마음이 찌릿해졌지만.
그래서 모든 것을 제쳐두고 물통 가득 정수된 물을 담아와 메마른 화분에 조심스레 부었다. 메마르고 갈라진 흙 사이로 물이 흡수되면서 쉬익 쉬익 소리가 났다. 마치 극도의 갈증 상태에서 숨도 쉬지 않고 들이키는 생맥주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소리 같았다. 얼마나 목이 탔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지런히 줄기를 키우고 뿌리를 뻗어내고 새 잎을 틔웠을 그 인내는 얼마나 거룩한 것인지.
마른 화분에 물을 주면서,
내 마음 속에 차오르는 것은 미안함과 부끄러움, 그리고 고마움이었다.
그 마음들이, 자꾸만 초록의 생명들을 곁에 두고 싶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