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보내며

by휴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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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까지만 해도 에어컨 없이는 잠들기 어려웠는데, 어느 저녁부터 창문을 열어놓고도 견딜 만해졌다. 밤공기에 섞인 열기가 조금 빠지고, 매미 소리도 예전만큼 성가시게 들리지 않는다.


여름이 가고 있다는 걸 이런 데서 알아차린다.


냉장고를 열면 습관처럼 찾던 얼음 가득한 음료도 조금 덜 생각나고, 해가 길어서 저녁을 서두르지 않아도 되던 날들도 어느새 짧아졌다. 한동안 매일 입던 얇은 옷들을 정리하다 보면 여름이 정말 지나가고 있다는 게 실감난다.


나는 계절을 떠나보낼 때마다 꼭 무언가를 정리한다.


이번 여름에 좋았던 것들을 하나씩 떠올려보기도 한다. 유난히 맛있었던 음식, 몇 번이고 올려다봤던 해질녘 하늘, 늦은 시간까지 이어졌던 산바카라. 특별한 사건은 많지 않았는데도 이상하게 기억나는 장면들은 꽤 있다.


아마 계절도 그런 식으로 기억되는 것 같다.


‘2026년 여름’이라고 크게 묶어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날의 습도와 그날 마셨던 음료의 맛, 퇴근길에 우연히 마주친 하늘 같은 작은 조각들로 남는다.


그러고 보니 여름을 보내는 일은 생각보다 담담하다.


아쉬워하며 붙잡고 있을 틈도 없이 어느 날 긴소매 옷을 꺼내게 되고, 밤에는 창문을 조금 더 닫게 된다. 여름은 떠난다는 인사도 없이 자기 몫의 시간을 다 쓰고 조용히 다음 계절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나도 그렇게 보내주려고 한다.


올해의 여름이어서 좋았던 것들을 몇 가지 마음에 남겨두고, 나머지는 계절과 함께 흘려보내면서.


다음 여름이 오면 또 새로운 장면들이 생길 테니까.


그때까지 잘 지내자.


올해의 여름도, 그리고 이 여름을 지나온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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