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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드라마 김 부장의 한 장면이었다. 주인공인 김 부장과 두 친구, 셋은 1년에 한 번씩 만남을 가진다. 그중 한 친구가 김 부장에게 '우리 이제 좀 더 자주 얼굴 좀 보자'라고 하며 건네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 한마디는 이렇게 우리 1년에 한 번씩 만나면, 죽을 때까지 많이 만나봤자 서른몇 번은 더 되겠냐는 내용의 대사였다. (대략 그런 내용의) 그 말을 듣자마자 내 머리에 종이 딩 울렸다. 막연히 어림으로 재어 짐작하는 것과, 가시적인 수치로 변환한 것의 체감차가 이렇게 큰 것이었다니. 누군가는 서른 번이면 10이 넘는 두 자리 숫자잖아. 꽤 많은 것 아니야?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으나. 우리 모두 알고 있지 않은가. 한 달은 30일이지만 그 한 달이 이제 막 시작된 것 같은데 어느새 월 말에 다다랐을 때 경악에 가까운 놀라움을.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갑자기 내 주변의 모든 것들에 유통기한이 필터링되기 시작했다. 내가 매일 신고 있지만, 언젠가는 구멍이 나거나 흐물 해져 쓰레기통에 넣게 될 양말 두 짝. 출근길 아무렇게나 이것저것 쑤셔 넣느라 혹사당하는 나의 큰 숄더백. 매년 뜨는 생일 알람이 왠지 멋쩍고 부끄러워 모든 생일 알람을 꺼둔 나의 생일. 올해는 어디에서 식사를 하는 것이 좋을까, 어떤 선물을 준비하는 것이 좋을까 궁리하게 되는 어버이날을 앞둔 나의 고민들도.
물성을 지닌 무언가부터, 형태를 지니지 않은 종류의 것들까지. 그 모든 것들에 무한이라는 것은 성립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왜 모든 것의 존재는 부재의 순간을 직면했을 때 더 그 무게의 체감이 극대화되는 것일까. 공기처럼 늘 당연히 곁에 있는 것들이, 언제까지나 당연하리라고 어리숙하게 믿으며 살아가고 있을까. 어쩌면 매 순간 그 끝을 생각하며 서글퍼지지 않기 위한 본능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조그만 다짐을 해 본다. 모든 것에는 유통기한이 정해져 있다고. 끝이 없는 것은 없다고 회의적이고 냉소적인 마음으로 살아가지는 않겠으나, 그 사실을 잊지는 않겠다고.
드문 드문 그 깨달음의 조각을 꺼내어 부러 손등에 콕 찔러보고 머리에 콩 두드려보면서 당연한 존재들의 소중함을 잊지 않겠다고.
당연한 것들이, 실은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