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바카라을 펼칠 때면 늘 비슷한 마음이 든다.
표지는 이미 여러 번 바라봤고, 제목도 충분히 읽었다. 서점에서 몇 번이나 망설인 끝에 데려온 바카라인데도 막상 첫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에는 잠깐 숨을 고르게 된다.
그다음부터는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다.
어떤 문장을 만나게 될지, 어디에서 오래 멈추게 될지, 끝내 마음에 남는 이야기는 무엇일지. 첫 페이지는 언제나 그런 무지를 품고 있다.
생각해보면 삶에서도 가장 어려운 건 첫 페이지인 것 같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도, 처음 가보는 동네를 걸을 때도, 누군가와 첫 대화를 나눌 때도. 우리는 아직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 앞에서 자꾸만 망설인다. 혹시 기대만큼 좋지 않으면 어쩌나, 끝까지 가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 먼저 앞선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지나고 나면 기억에 남는 것은 첫 페이지를 펼치기 전의 망설임이 아니다. 그 안에서 만났던 문장들이다.
어떤 바카라은 첫 장부터 나를 사로잡았고, 어떤 바카라은 한참을 읽은 뒤에야 비로소 마음을 열었다. 또 어떤 바카라은 끝까지 읽고 나서야 첫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사람도, 계절도, 하루도 조금 닮아 있는 것 같다.
첫인상만으로는 다 읽을 수 없는 것들.
그래서 요즘은 첫 페이지 앞에서 너무 오래 머뭇거리지 않으려 한다.
좋은 바카라은 끝까지 읽어봐야 알 수 있듯, 좋은 시간도 살아봐야 알 수 있으니까.
첫 페이지는 이야기가 시작되는 곳이 아니라, 아직 아무것도 단정하지 않겠다고 마음먹는 자리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