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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수'라는 단어를 머릿속에 머금고 곰곰이 생각에 잠기어 본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역시 아웃도어 브랜드의 광고 문구나 홈쇼핑 방송에서 친숙하게 들어온 단어라는 것. 갑자기 두 사람이 마주보고 멀쩡한 바지를 한 쪽씩 나누어 잡고는 느닷없이 물을 들이 붓는다. 그러면 마치 방탄조끼처럼 동그란 물방울들을 튕겨내고, 모두가 감탄하며 옷의 뛰어난 기능을 치하하는 흐름이다.
실은 그 외에도 방수의 기능이 탑재되는 것은 가장 초기 모델에서의 한단계 업그레이드 된 것을 반영하는 지표이기도 하다. 휴대폰이든, 시계든 각종 전자기기든 의류 잡화든지간에. '방수'라는 단어가 적힌 태그를 달고 나면 가격도 상승하는 비례관계가 성립된다. 그런걸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방수'라는 기능에 엄청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기도 하다. 본체에 무언가가 침투하거나, 훼손되는 것을 꺼리는 마음은 모두의 본능같은 걸까.
그래서 나는 엉뚱한 상상을 한다. 나에게도 방수기능이 탑재되어 있었으면. 나를 잠식해오는 눅눅한 습기와 상상도 못한 타이밍에 머리 위로 쏟아지는 소나기 같은 것들. 내 삶을 정신없이 흔들어 놓는 파도와 홍수 속에서도 코웃음치며 멀쩡히 살아남을 수 있는 강력한 방수기능을 탑재한 인간이 되고 싶다. 어디 한번 태풍이든 쓰나미든 다 몰아쳐보던가. 눈하나 깜짝 하지 않고 홈쇼핑 화면 속 옷에 뿌린 물이 떼구르르 굴러 바닥으로 떨어지던 그 장면처럼 다 튕겨내버릴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러면 이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세상 속에서 나를 잠식해 올 모든 파도들을 담대한 마음으로 맞서낼 수 있지 않을까. 어디 와 보라지, 조금은 건방진 표정으로. 어차피 난 괜찮을거라는, 믿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