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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누군가 내게 소울 푸드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잠깐의 고민 후 엄마가 해 주는 고등어 묵은지 조림이라고 대답했다. 말 그대로 고등어와 묵은지, 양파, 크게 썬 무우, 청양고추 등을 넣고 오래 오래 끓인 요리다. 특별히 우리 엄마의 요리에 킥이 되는 레시피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유별난 메뉴라고 보기도 어렵다. 굳이 범주에 넣자면 김치찌개, 된장찌개, 미역국 등과 동등한 포지션이랄까. 이상하게 마음이 심란하고, 쓸쓸해질 때. 몸도 마음도 허전하고 가라앉기 시작할 때마다 떠올랐던 엄마의 묵은지 조림.
고등어 조림은 곁들이는 여러 야채의 종류에 따라 다양하게 변주될 수 있지만 묵은지를 넣고 만든 고등어 조림은 왠지 조금 다른 느낌이 들었다. 오랜시간 동안 김치 양념을 머금고 있던 묵은지의 매콤 알싸하고 시큼한 맛이 고등어와 다른 야채들, 숭덩숭덩 썰어진 무우에 그대로 스며들어 모든 맛을 하나로 조화롭게 이어주는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맛보다도 어쩌면 다른 포인트에 있었다. 처음 만들었을 때보다 한번 데워 먹었을 때 힘주지 않아도 실오라기처럼 스르르 풀려나가는 부드러운 묵은지의 식감이 좋았다. 소위 이빨이 없어도 먹을 수 있을 것만 같은 뭉근함. 굳이 내가 애쓰거나 힘들이지 않아도 언제든 나의 입안으로 들어와 잔뜩 머금은 양념의 맛을 다 느낄 수 있도록 해 주는 기분. 맛과 식감, 묵은지가 지닌 모든 것으로 나를 무장해제 시키는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렌지에 3분동안 데워서 만든 요리에서는 결코 느낄 수가 없는 것이다. 스스로를 익히고 삭힌 뒤에 또 다시 끓여지고 데워지며 만들어진 시간 속에서 만들어진 것들. 어설프게 흉내내거나 벼락치기로 만들어낼 수가 없이 정직한 시간의 결과물인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품고 있는 치유력은 놀랍다. 끙끙 앓고 있던 고민과 문제들을 나보다 더 오랜시간 살아온 사람들에게 털어놓았을 때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단순한 논리로 단번에 정리되는 것처럼. 그렇게 시간을 품고 깊어진 것들이 지닌 힘은 감추어지지 않는다. 그리하여 묵은지의 맛에는, 시간이 깃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