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의 거짓말-설렁탕으로 대표되는 당대 외식문화

bySejin Je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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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에서 가경은 유소란 부부에게 받은 가불로 꽃님이에게 약을, 노마에게는 자전거를 사준다. 그덕에 노마는 인력거보다 조금 편한 일, 즉 음식배달을 하게 되고 그 와중 사진관에서 가경과 마주치는데...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매식(買食)문화는 낯선 것이었다. 과거 양반들이 남한산성에서 하인들을 시켜 배달해 먹었다는 성주탕(해장국)이 있으나 소수 기득권층만의 문화여서 대중화되지는 못했다. 이후 일제강점기 때 육우 생산이 늘면서 경성 곳곳에는 설렁탕 같은 고기 요리를 파는 곳이 늘어났다. 또 자전거가 보급되면서 집에서 편하게 음식을 시켜다 먹는 것이 유행하게 됐다고.


설렁탕의 유래에 대한 이야기 중 가장 흔한 썰이 바로 농사가 잘 되기를 기원하는 선농단 제사에 쓰였다는 것이다. 왕이 직접 밭을 가는 '친경' 행사 후 백성들에게 음식을 내어주며 잔치를 벌였는데, 제사의 목적을 생각하면 설렁탕이라는 음식이 오르는건 뭔가 맞지 않는 일이다. 풍작을 기원하는데 농사밑천인 소를 잡아 요리했다? 이 썰은 그냥저냥 떠도는 민간어원일 가능성이 높다.


아무튼 설렁탕은 가난한 인력거꾼인 김첨지가 '운수 좋은 날'에 사갔다는 점으로 미뤄, 살짝 부담은 되지만 그렇다고 감당 못할 수준도 아닌 정도 가격에 팔렸을 것으로 짐작된다. 반면 채만식의 '태평천하'에서 어린 기생 첩이 시켜먹는 청요리는 꽤 값이 비쌌고, 지독한 구두쇠인 윤직원 영감은 음식값을 치르며 손이 달달 떨렸을 것이다. 그밖에 서민들이 사먹을 수 있을법한 외식 메뉴로는 냉면, 찐빵, 우동 같은 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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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30년대 무렵 일본에서 건너온 요리의 치트키, 아지노모토의 등장도 외식업의 발전에 한몫을 했다. 식당을 찾는 이들의 수가 늘면 늘수록 설렁탕 같은 음식의 경우 하루종일 푹 고아 국물을 내는 작업이 만만치 않다. 아지노모토 한숟갈은 수고를 덜면서 감칠맛을 내주는 마법같은 재료였다. 평양냉면 육수 역시 아지노모토를 사용하는 일이 많았다. 현대에 와서 MSG 유해성 논란이 일어나기 전까지 인공 조미료는 주방의 필수품으로, 일제 패망 후에는 대상그룹이 국산 조미료 '미원'으로 업계를 평정했다.


설렁탕집에서 국물을 더 진하게 만들기 위해 분유나 프림을 넣는 일이 있었다. 여기서 착안했는지 '대장금'에서는 장금이가 타락(우유)을 설렁탕에 넣는 꼼수를 부리다 딱 걸렸는데, 당시 우유는 왕의 보양식으로 돈이 많아도 쉽게 먹을 수 없는 음식이었으니 꼼수라기보단 업그레이드라고 해야 할지도..(물론 서민음식이 과제였기 때문에 보기좋게 탈락)


한편 설렁탕에 소면사리를 넣게 된 것은 60~70년대 혼분식 장려정바카라의 흔적이다. 박정희 정부는 모든 식당에 무미일(無米日)을 도입, 아예 쌀을 쓰지 말 것을 종용했고 탕만 덜렁 내놓을 수 없어 대신 넣은 것이 바로 소면사리였던 것이다.


많이 번거롭기는 하지만 설렁탕은 2~3일 정도 우려 약간 찐덕할 정도가 됐을 때가 맛있다. 여기에 다진 파마늘 듬뿍, 후추는 옵션이다. 진하고 뜨거운 국물에 밥 한공기 말아 정신없이 먹다 보면 어느새 몸과 마음에 따스한 온기가 전해진다. 한국인의 1호 배달음식이라 할 수 있는 설렁탕은 지금도 많은 이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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