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맛이 좋아

아메리카노밖에 몰랐던 시절

by조매할

장대리, 커피 한잔 할까?

네 좋죠! 가시죠!


2013년 5월, 대학원 졸업식을 앞두고 대기업에 취업이 되었다. 첫 출근은 7월 5일이었다.


나는 뉴욕에 있는 대학원에서 도시계획을 전공했다.


졸업 즈음에 지난 이 년 동안 받은 학자금 대출 금액을 보았다. 입학할 때는 개미같이 작게 보였던 금액이 이 년 후에는 코끼리만 했다. 전공에 맞는 직업을 구했다가는 밥벌이만 겨우 하겠다 싶었다.


그렇게 들어간 회사였다.

잘하거나 하고 싶었던 일이 아닌, 모자란 것을 채우기 위해.

일 년 하고 삼 개월여 동안 오전 7시에 나가 자정에 가까워져서야 집에 들어왔다.


뜨겁고도 쓰디쓴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했다. 과장님이 물었다.


할 만해?

네, 재밌습니다.

그래, 하다 보면 금방 익숙해질 거야.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군대 시절, 다들 가장 먹고 싶은 음식으로 삼겹살과 피자를 외칠 때 나에게 가장 그리웠던 것은 아메리카노와 담배 한 개비였다.


커피 맛이 그리웠던 게 아니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잠시 홀로 있는 시간.


병장이 되었을 때는 종이컵에 뜨거운 물을 붓고 풀어 넣은 막대 커피가 일상의 큰 위안이었다.


제대 뒤 온라인 게임 생활을 할 때도 커피는 뜨겁거나 차가운 아메리카노만 있는 줄 알았다.


대학원 시절에도 다를 건 없었다.

수업 시작 전과 시험이 닥쳤을 때 많이 마셨다.

저렴한 원두를 저렴한 그라인더에 갈아 저렴한 커피 메이커로 내려 텀블러에 넣어 다녔다. 우유나 설탕은 넣지 않았다. 쓴맛이 좋았다.


장대리, 야식 시켜야 될 것 같다. 뭐 먹을까?

어제 분식 먹었으니 오늘은 중식으로 가 볼까요?


월말이었다. 야식 뒤에는 꼭 커피를 마셨다.

쓴맛이 좋아 마시던 커피가 더 쓰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