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를 시작하고 나서, 처음으로 다른 결의 글을 써야 했다.
그동안 써온 글은 전부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는 글이었다. 이해해 달라거나 믿어 달라거나, 혹은 그저 예의를 갖추기 위해 고른 문장들...
하지만 강단에서는 전혀 다른 언어가 필요했다.
학과 소개.
수업계획서.
강의안.
그리고 가장 낯설었던 것, 성적표.
학과 소개부터 결이 달랐다. 이곳에서 무엇을 다루는지, 학생이 무엇을 배우게 될지, 왜 이 과목이 필요한지를 적어야 했다. 내가 아는 것을 나열하는 글이 아니라, 아직 가보지 않은 사람에게 그 길을 미리 비춰주는 글이었다.
같은 답을 썼어도 점수가 갈리는 순간들이 있었다. 어디까지를 정답으로 볼 것인가, 어디서부터 감점할 것인가. 그 기준을 세우는 일은 지금까지 해온 그 어떤 문장 고르기보다 무거웠다.
문장은 고쳐 쓸 수 있었고, 메일은 다시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성적표에 새겨진 숫자는 단 한 번으로 그 학생의 한 학기를 규정해 버렸다.
나는 줄곧 무언가를 전달하는 사람이었고 때로는 평가받는 사람이었지만, 이 자리에서는 끝내 판단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말을 고르는 것과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겉보기엔 비슷해도 전혀 다른 무게를 지닌 일이었다.
그리고 그 숫자의 무게를 감당해야 했을 때, 나는 내가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비로소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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