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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로 옮기는 문장

by사부작


​강의를 시작하고 나서, 처음으로 다른 결의 글을 써야 했다.
그동안 써온 글은 전부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는 글이었다. 이해해 달라거나 믿어 달라거나, 혹은 그저 예의를 갖추기 위해 고른 문장들...


​하지만 강단에서는 전혀 다른 언어가 필요했다.
학과 소개.
수업계획서.
강의안.
그리고 가장 낯설었던 것, 성적표.


​학과 소개부터 결이 달랐다. 이곳에서 무엇을 다루는지, 학생이 무엇을 배우게 될지, 왜 이 과목이 필요한지를 적어야 했다. 내가 아는 것을 나열하는 글이 아니라, 아직 가보지 않은 사람에게 그 길을 미리 비춰주는 글이었다.


​같은 답을 썼어도 점수가 갈리는 순간들이 있었다. 어디까지를 정답으로 볼 것인가, 어디서부터 감점할 것인가. 그 기준을 세우는 일은 지금까지 해온 그 어떤 문장 고르기보다 무거웠다.


문장은 고쳐 쓸 수 있었고, 메일은 다시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성적표에 새겨진 숫자는 단 한 번으로 그 학생의 한 학기를 규정해 버렸다.


​나는 줄곧 무언가를 전달하는 사람이었고 때로는 평가받는 사람이었지만, 이 자리에서는 끝내 판단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말을 고르는 것과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겉보기엔 비슷해도 전혀 다른 무게를 지닌 일이었다.


그리고 그 숫자의 무게를 감당해야 했을 때, 나는 내가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비로소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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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를 못하는 한국 엄마. 파리에서 전시합니다. 아이와 함께 만들었던 그림바카라을 시작으로 파리에서 아트북을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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