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인간에게 내려진 재앙
비범한 사람들은 태생부터 다른 걸까? 아니면 후천적인 노력의 결과인 걸까?
나는 어릴 적부터 소심하고, 눈치를 잘 살 피는 편이었다. 게다가 살짝의 예민함까지 가지고 있다. 그래서 누군가의 기분을 쉽게 알아채고, 주변의 분위기까지 쉽게 알아챈다. 덕분에 누가 나를 싫어하는지, 누가 나를 좋아하는 지도 아주 빠르게 판별하는 능력 아닌 능력이 있다. 이 능력은 지금까지 살아오는데 많은 편리함을 주기도 하고 많은 불편함을 주기도 했다. 번지르르한 말로 포장하지 않는다면 결국 나는 다른 사람의 이목을 꽤나 신경 쓰는 편이라는 것이다.
내가 유년시절을 보낸 지역은 중학교를 뺑뺑이로 갔다. 아마 가고 싶은 학교를 1 지망부터 9 지망까지 적게 되어있었던 것 같다. 중학교 배정을 받던 날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보통의 아이들은 1 지망에서 2 지망으로 분류되었고 운이 없어 봐야 3 지망이었다. 담임선생님은 교탁에서 친구들 이름을 한 명씩 부르며 배정받은 중학교를 알려주셨다. 중간에 선생님께서 장난을 친다며 어떤 친구에게 ‘얘, 어떡하니. 너 7 지망이야.’라고 말씀하시자 그 아이의 얼굴이 잿빛으로 변했다. 선생님은 놀란 아이를 달래며 ‘장난이야.’라고 하셨다. 반 아이들은 와르르 웃음을 쏟아냈다. ‘그럼 그렇지, 누가 7 지망이 돼.’ 라며 나는 조용히 내 차례를 기다렸다. 곧 선생님께서 내 이름을 부르셨다. 평소에 나를 예뻐한다고 생각했던 선생님의 목소리가 조금 다르다고 그때도 빠르게 알 수 있었다. 뒷목이 서늘해졌다.
“수진아... 왜 너만 이 학교가 됐지?”
선생님의 어두운 눈빛과 교실 속 가라앉은 분위기는 곧 나의 절망임을 깨달았다. 나는 생전 들어보지 못한 동네에 내가 7 지망으로 썼던 중학교에 뽑힌 것이다. 그날의 충격으로 집에는 어떻게 돌아왔으며 우울한 마음에 초등학교 졸업식은 어떻게 치렀는지 지금도 잘 기억이 안 난다.
나는 결국 버스를 2번이나 갈아타고 약 50분이 걸리는 통학 거리를 3년 내내 다녔다. 600명이 되는 졸업생 중 단 3명이 나처럼 운이 없었다. 그중에 내가 당첨된 것은 소심하고 눈치를 잘 살피는 예민한 13살 소녀에게 내려진 재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