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한 평범함
1980년대에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2026년까지 근 40년을 꾸준하게 한국에서 자라왔다. 근면과 성실을 최고로 여겼던 부모님 아래 안정된 삶을 목표로 학창 시절과 슬롯생활을 거쳐 평범한 가정의 엄마가 되었다.
평범하게 지낸다는 것 역시 커다란 소망이 될 수 있다는 걸 알 고 있다. 큰 풍파를 맞지 않고 배부르고 등따시게 잠들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 그건 모든 행운과 치열한 노력의 집합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때론 평범함은 구령대 앞 전교생이 모여 조회를 하던 순간을 떠오르게 한다. 한 뼘이라도 줄이 튀어나오면 마이크를 타고 불호령이 퍼지던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던 여름날의 운동장 말이다. 그리고 나는 일상 속에서 그때 느꼈던 갑갑증이 문득문득 솟아오른다.
고등학교 때 우리 반에는 자기만의 세상을 가지고 있는 한 친구가 있었다. 당시 우리 학교는 그 지역 내에서 처음으로 두발규제가 풀렸다. 모두들 신이 나서 긴 머리를 흩날리 던 때 혼자 숏컷을 고수하는 눈에 띄는 친구였다. 수업시간에도 교과서가 아닌 다양한 분야의 바카라들을 항상 읽고 있었다. 소문난 독서광이었던 그 친구는 공부를 썩 잘하는 편은 아니였지만 수능이 끝나고 본인이 원하는 과에 입학하였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프랑스어 통역 일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어렴풋이 들었다.
싸이월드가 성행하던 때, 그 친구의 미니홈피를 통해 프랑스에 있는 친구의 모습을 보았다. 당혹스러운 이질감이 느껴지면서도 끓어오르는 부러움을 동시에 느꼈던 건 아마 그 친구가 나에게 했던 말이 마음속에 콕하고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수진아, 넌 정말 평범해.”
친구의 그 말은 이상하게도 나에게 커다란 반감으로 다가왔다. 수진이라는 이름 심지어 성도 김이박 중 김을 가진 나는 한 번도 튀어본 적 없고, 규율을 어겨본 적도 없는 교실 속 하나의 점 같은 아이였다. 독특한 그 친구 눈에는 내가 그런 점 중에 하나로 보였을 것이다.
그 이후 나는 오히려 ‘너는 좀 특이해, 너는 좀 달라.’라는 말을 가끔 들을 때마다 그 친구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리고 ‘너는 나를 잘 못 봤어.’라는 혼자만의 승리감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번 인생에서 가장 평범한 선택지를 선택했고 그 선택에서 벗어나지 않음에 안도감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