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고각하 '照顧脚下'

'사소한 일상의 경험을 비즈니스 인사이트로 바꾸는 매일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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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새로운 카데고리 바카라임자로 부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의 일이었다.

해당 카데고리 전체 매출의 20%를 담당하던 메인 브랜드가 갑자기 계약을 파기하고, 경쟁사와 계약을 맺었다. 불행은 겹쳐서 온다고 했던가.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번째 사건이 터졌다. 공들여 준비했던 첫 신상품이 경쟁사의 유사 제품 선출시에 밀려 처참하게 묻히고 만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초심자였던 내가 믿고 의지했던 베테랑 팀원이 프로젝트 한복판에 퇴사를 하겠다고 통보한 것이다. 이 모든게 새로운 업무를 맡은지 석 달 사이에 벌어진 일들이었다.


그 시기 출근길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눈을 떠도 오늘 하루를 어떻게 버텨야 할지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나는 퇴근 후 아무 생각 없이 한 가지 행동을 반복했다.


그냥 무작정 걷는 것이었다.



우리는 힘든 시기가 오면 본능적으로 출구를 찾는다.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빠져나갈 수 있을까?'

'언제쯤 이 터널이 끝날까?'


이른바 멀리 있는 빛을 찾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어두운 터널 안에서 멀리 있는 빛을 찾으려 하면 발밑의 돌부리에 걸려 오히려 더 깊이 넘어지는 경우가 있다. 먼 출구를 찾기에 앞서 지금 발밑을 먼저 살펴야 하는 이유다.


'조고각하(照顧脚下)'

조고(照顧)는 제대로 보는 것이나 반성하는 것을, 각하(脚下)는 발밑을 뜻한다. 즉,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을 때, 멀리 보려 하지 말고 지금 네 발밑을 살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고사성어다.



그 힘들었던 시절, 매일 퇴근 후 걷는다는 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그때는 정확히 몰랐다.


딱히 목적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운동을 해야겠다는 의지로 시작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답답한 마음에 바람이라도 좀 쐬며 오늘 있었던 일들을 복기해보자란 생각에 좀 걸었던 것이 그 시작이었다.

지하철역 한 정거장만 걷자 했던 것이 첫 번째 지하철역 입구를 지나쳐 그냥 걸었다.

어떤 날은 30분이 될 때도 있었고, 어떤 날은 한 시간을 훌쩍 넘기기도 했다.

사실 걷는 동안 해결된 문제는 아무것도 없었다. 내일 아침 마주해야 할 문제들은 그대로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걷고 나서 집에 돌아오면 조금은 숨이 쉬어졌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나만의 '조고각하'가 아니었을까 생각하곤 한다.


멀리 있는 해결바카라을 찾는 것을 잠시 내려놓고, 지금 이 발밑의 감각에 집중하는 것.

아스팔트가 발바닥에 닿는 느낌, 밤공기가 폐 안으로 들어오는 감각, 가로등 불빛 아래 내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는 풍경. 그 감각들이 나를 무너지지 않게 붙잡아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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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지 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Ernest Shackleton)'의 이야기를 소개해본다.

1914년 남극 탐험에 나선 그의 배 인듀어런스호는 남극 빙하에 갇혀 서서히 부서져 갔다.

탈출할 방법도, 구조를 요청할 방법도 없었다. 영하 수십 도의 빙판 위에서 28명의 대원들과 함께 생존 자체가 불투명한 시간이 이어졌다.


그 극한의 상황에서 섀클턴이 대원들에게 요구한 것은 놀랍도록 사소한 것들이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날 것. 식사를 거르지 말 것. 침낭을 정리할 것. 동료와 대화를 나눌 것.


멀리 있는 구조선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버티기 위한 가장 작은 루틴들을 지키는 것이 그가 대원들에게 요구한 최소한의 지시였다. 그것이 22개월간 극한의 환경속에서 섀클턴이 28명의 승무원 전원을 살려낸 가장 중요한 전략이었다.


힘든 시기를 버티는 것과 힘든 시기를 돌파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우리는 흔히 위기를 '돌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강력한 해결바카라을 찾고, 결정적인 한 방을 날려서 상황을 뒤집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속에서 위기가 그런 식으로 해결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대부분의 위기는 돌파되는 것이 아니라 버텨지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면 그 터널을 빠져나온 방법은 결정적인 한 방이 아니라, 어김 없이 매일 아침 출근길에 오른 것, 포기하지 않고 다음 기획안을 준비한 것, 그리고 매일 저녁 아무 생각 없이 한 발 한 발 걸었던 것들의 축적이었다.


멀리 있는 해결바카라을 찾아 헤메는 것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발밑의 한 걸음을 찾는 것.


'걸어서 뭐가 해결돼요?'

누군가는 되물을 수도 있다.

그렇다. 걷는다고 해결되는 것은 없다. 그게 요점이다.


해결하려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앞을 보지 않아도 되는 시간, 그냥 발밑을 보며 한 걸음씩 내딛는 시간.

그 시간이 다음 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조용한 힘을 만들어준다.

걷기는 가장 원초적인 조고각하의 한 방법이다.


꼭 걷기가 아니어도 좋다.


자신만의 조고각하 루틴 하나 정도는 만들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지금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프로젝트가 무너졌을 수도 있고, 팀이 흔들리고 있을 수도,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는 시간을 겪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그 어둠 속에서 멀리 있는 빛을 찾으려 하기 전에 오늘 저녁, 혹은 내일 아침 딱 한 가지만 해보자.

그냥 나가서 걸어보라.


목적이나 목적지는 없어도 된다.

단, 스마트폰 화면은 잠시 끄고 걸어라.

그냥 발밑을 보며 한 걸음씩 내딛는 것.


아스팔트가 발바닥에 닿는 그 감각이 지금 이 순간 네가 살아있다는 것을,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조용히 알려줄 것이다.


발아래를 살펴라.

지금 이 한 걸음을 살펴라.

터널은 걸어서만 빠져나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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