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일상의 경험을 비즈니스 인사이트로 바꾸는 매일의 기록'
얼마 전 SNS를 스크롤하다가 한 장의 인포그래픽 앞에서 손이 멈췄다.
지구에 사는 78억 명의 인구를 100명으로 통계 압축해 놓은 자료였다.
전세계 인구 100명 중
11명은 유럽, 5명은 북미, 9명은 남미, 15명은 아프리카, 60명은 아시아에 산다.
49명은 시골에 살며, 51명은 도시에 산다.
77명이 자기 집을 가지고 있으며, 23명은 살 곳이 없다.
21명은 영양 과잉이며, 63명은 배불리 먹을 수 있다. 하지만 15명은 영양실조에 허덕인다.
48명의 하루 생활비는 미화 2달러 미만이다.
87명은 깨끗한 식수를 마시지만, 13명은 깨끗한 식수가 부족하거나 오염된 물을 마셔야 한다.
75명은 휴대전화가 있지만, 25명은 그렇지 않다.
7명은 대학교육을 받았지만, 93명은 대학은 다니지 않았다.
83명은 읽을 수 있지만, 17명은 문맹이다.
33명은 기독교인, 22명은 무슬림, 14명은 불교도, 12명의 종교는 위와 다른 종교다.
나머지 12명은 종교적 신념이 없다.
26명은 14년 미만 살며, 66명은 15세에서 64세 사이에 사망했다.
단 8명만이 67세 이상을 산다.
만약 자기 집이 있고, 밥을 든든히 먹고, 깨끗한 물을 마시고,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다면.
인터넷 쇼핑을 할 수 있고, 대학에 다녔다면, 당신은 극소수의 특권충일 확률이 높다.(상위 7% 미만)
이 글을 보면서, 흥미로웠던 점은 끝자락에 덧붙여 있던 마지막 한 줄이었다.
'집이 있고, 깨끗한 물을 마시고, 인터넷을 쓸 수 있고, 대학을 졸업했다면, 당신은 전 세계 7% 미만의 특권층에 속할 것입니다.'
지금 스마트폰으로 이 글을 읽고 있던 나 역시 그 7% 안에 속해 있었다.
잠깐 멍하니 앉아 생각을 해봤다.
그리고 기획자로서의 본능이 조용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우리가 매일 기획하는 상품과 서비스의 고객은 이 100명 중 누구에 해당할까?'
기획자들의 회의실에서 가장 많이 오가는 단어 중 하나가 '페인포인트(Pain Point)'다.
페인포인트(Pain Point, 통점)란 고객이 상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겪는 불편함, 어려움, 고충을 뜻한다. 단순한 불만부터 제품 사용 시 느끼는 짜증까지, 고객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지점을 의미하며 마케팅이나 서비스 기획에서 개선해야 할 핵심적인 지점이 바로 페인포인트다.
나는 고객이 느끼는 불편함, 즉 이 '페인포인트를'을 찾아 해결바카라을 제시하는 것이야말로 기획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배웠다.
고객이 겪는 불편함,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
기획자는 이 페인 포인트를 찾아 그것을 해소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기획한다.
하지만 앞의 예시에서 보았듯, 대학을 졸업하고 인터넷을 자유롭게 쓰는 사람은 상위 7% 특권층에 해당한다. 이 7%에만 맞춰 색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보면, 나머지 93%의 진짜 고통은 보지 못할 수도 있다.
이 지점에서 나는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든다.
하나는 '자성(自省)'이다.
우리는 기획자로서 얼마나 좁은 세계의 문제만을 풀어왔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소비 여력이 있는 소수의 페인 포인트에만 집중해온 것은 아닌가 체크해 봐야 한다.
'좋은 기획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나는 늘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 답해왔다.
그런데 100명의 세계를 본 후 그 대답에 조용히 물음표를 달게 되었다.
'나는 어떤 고객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가.'
다른 하나는 '가능성'이다.
세계인구 100명이라는 통계를 뒤집어 생각해보면 아직도 기획되지 않은 세계가 훨씬 더 크다는 것이 보인다.
기획자로 16년을 살아오면서 나는 수없이 이 페인 포인트를 찾아 헤맸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지금까지 다뤄온 페인 포인트의 대부분 이런 것들이다.
'배달이 조금 더 빨랐으면.'
'포장이 조금 더 예뻤으면.'
'앱이 조금 더 편했으면.'
'사이즈가 조금 더 다양했으면.'
하지만 인터넷을 쓰지 못하는 70명, 대학에 가지 못한 93명, 하루 2달러로 살아가는 48명.
이들의 페인 포인트를 이해한다면 평소에는 보지 못했던 거대한 신대륙을 발견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이 100명 중 우리가 외면해온 페인 포인트를 찾아내고, 그것을 기획으로 풀어낸 사람들은 없을까?
물론 있다. 그리고 그 기획들은 내가 지금까지 해온 기획보다 훨씬 거대한 세계를 바꿔놓았다.
그라민 은행(Grameen Bank)
방글라데시는 100명의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축에 속하는 나라다.
1970년대 방글라데시의 농촌 여성들은 이런 문제에 직면해 있었다.
'돈을 빌리고 싶어도 담보도 없고, 신용 기록도 없던 그들은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없었다.'
당시 기존 은행들의 시각에서 이 여성들은 '고객'이 아니었다. 리스크였고, 철저하게 배제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무하마드 유누스(Muhammad Yunus)'는 이 페인 포인트에서 기회를 보았다.
'담보가 없으면 담보를 대신할 무언가를 만들면 된다.'
그가 설계한 것은 '그룹 대출' 시스템이었다. 5명이 한 그룹을 이루어 서로가 서로의 보증인이 되는 구조를 기획한 것이다. 그는 물질적 담보 대신 '신뢰'와 '연대'를 담보로 잡은 것이다.
결과는 어땠을까.
그라민 은행의 대출 상환율은 무려 98%에 달했다. 저신용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일반적인 은행 대출 회수율이 80%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98%는 압도적인 수치에 해당한다.
기존 은행들이 '리스크'라 외면했던 사람들이 오히려 가장 성실한 상환 고객이었던 것이다.
페인포인트를 제대로 읽은 기획 하나가 수백만 명의 삶을 바꿔놓았음은 물론, 2006년 무하마드 유누스는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M-Pesa
케냐는 100명 중 70명이 인터넷을 쓰지 못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은행 계좌조차 없는 나라다.
2007년 이전 케냐 농촌 지역 사람들은 이런 문제에 직면해 있었다.
'도시에 나가 일하는 가족이 고향에 돈을 보내고 싶다. 하지만 은행 계좌가 없다. 송금 서비스를 쓰려면 수수료가 너무 비싸다. 현금을 직접 들고 이동하면 강도를 만날 수도 있다.'
우리야 손가락 하나 두드리면 간편하게 송금이 완료되지만, 적어도 케냐 사람들에게 돈을 보내는 행위는 이토록 위험하고 복잡하며 비싼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행위였던 셈이다.
영국의 이동통신사 보다폰(Vodafone)과 케냐의 사파리콤(Safaricom)이 이러한 페인포인트를 파고들었다.
'은행 계좌가 없어도 된다. 휴대폰만 있으면 된다.'
이렇게 문자메시지 기반의 모바일 송금 서비스 'M-Pesa'가 탄생한다.
'M'은 모바일(Mobile), 'Pesa'는 스와힐리어로 돈(Money)을 의미한다.
당시 케냐의 스마트폰 보급률은 형편없었지만, 피처폰(일반 휴대폰) 보급률은 상당했다. M-Pesa는 스마트폰이 아닌 가장 단순한 휴대폰으로 작동하도록 설계되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출시 2년 만에 케냐 성인 인구의 40%가 이 서비스를 이용했고, 현재 케냐 GDP의 절반이 이 플랫폼을 통해 흐른다. 은행이 외면한 페인 포인트를 기획으로 해결한 결과였다.
스타링크 (Star Link)
이러한 기획은 낙후된 지역에서만 탄생하는 것이란 생각은 편견에 불과하다.
기획자에서 가장 위험한 단어는 '당연히'다.
'당연히 와이파이는 잡히겠죠'
'5G 시대잖아요. 요즘 인터넷 안되는데가 어디있나요.'
하지만 전 세계 인구 통계에서 보았듯, 인터넷 접속이 불가능한 70%에게 이러한 '당연함'은 결정적 페인포인트다. 최근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일론 머스크의 '스타링크(Starlink)'는 바로 이 '당연함의 사각지대'라는 페인포인트를 가장 거대한 스케일로 해결한 기획의 정수다.
선진국이라 불리는 미국이나 유럽만 가봐도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면 인터넷 속도는 처참해진다. 광케이블을 깔기에는 비용 대비 효율이 나오지 않는 광활한 대지.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인터넷은 '권리'가 아니라 '간절함'이다.
스타링크는 땅 밑을 파는 대신 하늘 위를 덮는 역발상에서 시작된 기획이다.
수만 개의 저궤도 위성을 띄워 지구상 어디서든 '연결'되게 만든 것이다. 모두가 불가능이라 여겼던 기획이었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현실이 되었고, 전세계 900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한 세계 최대 통신망이 되었다.
스타링크를 서비스하고 있는 스페이스X는 올 하반기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기업가치는 약 2조달러(한화로 약 3,000조)에 이를 것이라 전망되고 있다. 이는 삼성전자의 20배에 달하는 수치다.
물론 모든 기획자가 세상을 바꾸는 거대한 사명을 짊어져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각자의 시장에서, 각자의 고객을 대상으로, 오늘의 기획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기획자의 본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보지 못한 100명의 세계를 한 번쯤 바라보는 것은,
기획자에게 꽤 유용한 훈련이 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지금 준비하는 기획이 100명의 세계에서 어디쯤을 향하고 있는지.'
'내가 해결하려는 이 문제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 이야기인지.'
'내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이 환경이 너무 좁은 세계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닌지.'
이런 문제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획자라면, 조금은 남다른 기획을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