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도움 없이 노년을 지낼 수 있을까?

나의 노년도 걱정 되기 시작했다.

by송주

지난 8월 중순이었다. 기온이 그 정절을 모른 채 오르고 있었다. 노약자 온열 질환 주의 경보 문자가 수시로 울렸다. 그 시기 친정 아빠의 겨드랑이 아래쪽 통증이 시작됐다. 불편함을 느낀 아빠는 병원을 찾았지만 이상이 없다는 소견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갑자기 기침을 하기 시작했고 밤부터는 38도가 넘는 열이 났다.



아빠는 올해 일흔셋의 할아버지이다. 하지만 허리도 꼿꼿하고 특별히 아픈 곳도 없다. 특히 아빠는 아직도 일을 하신다. 평생의 업인 트럭 일을 꾸준히 하시며 돈을 버는 든든한 가장이다. 20년 넘게 색소폰을 부셨고 그 실력 역시 출중하다. 색소폰을 연주한다는 건 악보의 음표를 척척 읽어내는 명민함과 충분한 폐활량이 필수인데 그런 면에서 아빠는 웬만한 청년 못지않았다.



그런 아빠가 갑자기 열이 나며 아프기 시작하자 우리 집은 비상이 걸렸다. 급히 아빠가 사는 지역의 병원에 가 다양한 검사를 했지만 열이 나는 원인을 찾지 못했다. 아빠는 주말 내내 기침과 고열에 시달렸고 월요일 내가 사는 지역의 종합 병원에 입원하게 됐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노년을 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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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이 넘는 아빠가 진료를 받고 입원 절차를 밟는 과정은 쉽지 않아 보였다. 옆에 엄마가 계셨지만 엄마 역시 일흔이 넘었고 접수를 하고 입원 수속을 하는 과정을 막힘 없이 해내기는 힘들었다.


진료 후 입원 결정이 난 다음 간호사는 작은 종이를 들고 나왔다. 그리고 입원 전 수속을 위한 과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1층 원무과 들렀다가, 3층 가서 X-ray 찍으시고, 2층 내려가서 채혈하신 뒤에 다시 4층 진료실로 올라오세요."

말은 간단했지만 넓은 병원 안에서 노부부가 검사실 찾기는 방 탈출 게임 미션을 실행하는 것과 다름없어 보였다. 천장에 달린 작은 안내판을 눈이 빠져라 올려다보며 헤매실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 글씨라도 잘 보이면 다행이다. 결국 나는 아픈 아빠와 주말 내내 병 간호로 지친 엄마를 데리고 유치원생을 이끌듯 병원을 오르내렸다.

더 큰 문제는 키오스크였다. 퇴원 수속을 하는 어르신 한 분이 데스크 앞에서 난감해 하고 있었다. 그건 데스크 직원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환자 바코드를 인식 시켜 키오스크에 퇴원 접수를 해야 한다. 바코드 찍기를 실패하면 환자 번호를 입력해야 하거나 주민 번호를 넣어야 한다. 이도 저도 안 되면 직원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어르신은 직원이 하는 말조차 이해를 못 하고 있었다. 이 상황은 내 부모님의 경우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또 다가올 내 미래이기도 했다.


디지털 시대, 노년은 아직 아날로그

비단 병원뿐만 아니다. 행정복지센터에 가 보면 서류 발급기 앞에 서서 당황해 하시는 어르신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불편함도 지나칠 수 없는 일이다. 결국 도우미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또 승차권 예매 역시 마찬가지다. KTX나 SRT 등을 이용해야 할 경우에도 문제이다. 승차권 예매 역시 요즘엔 모바일을 사용해야 빠르게 할 수 있다. 하지만 회원 가입, 좌석 선택, 결제까지의 과정은 노년에게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부모님이 서울에 계신 친척을 만나러 갈 때마다 기차표 예매는 내 몫이다. 스마트폰 연동 방식의 최신 가전제품들 역시 가지고 있다 해도 사용할 수 없다.



어느 날 친정 엄마와 일상을 묻는 통화 중이었다.

"간장, 물엿도 떨어져서 마트에 가야겠다."

엄마가 말했다. 나는 인터넷에서 주문하면 된다며 무겁게 사서 들고 오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당장 사러 가야 한다며 마트로 향하셨다. 엄마는 간단한 주문도 인터넷으로 하지 못하다. 그렇지만 딸을 귀찮게 하는 것은 더 원하지 않으셔서 늘 직접 사러 가는 수고를 하신다.

이런 엄마도 꼭 내게 부탁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분기별로 수강 신청을 받는 노래 교실 접수이다. 특정 날짜, 특정 시간에 인터넷으로 접수를 하는 노래 교실은 단 5분 안에 마감이 되는 클릭 전쟁이다. 때문에 접수 날짜가 되면 시시 때때 시간을 보며 신경을 곤두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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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지 않아도 디지털 자립을 위한 노력은 필수

엄마는 늘 말씀하신다.

"너는 똑똑하니 나처럼 불편하지는 않을 거야."

나는 생각했다.

"엄마, 나도 늙으면 똑같겠지. 요즘도 모르는 것 투성이야."

아빠는 3일 입원 후 건강을 회복하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병원에서부터 내 안에 묵직한 물음이 시작 됐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노년을 지낼 수 있을까?"

부모님은 점점 나이가 들어가고 나 역시 50을 바라보는 중년이다. 디지털 장벽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배워도 금방 새로운 기계가 나오고 새로운 프로그램이 나오니 돌아서면 또 배우고 익혀야 한다. 나 역시 지금은 잘하고 있지만 20년 후에는 키오스크 앞에서 땀을 뻘뻘 흘리는 노인이 되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노년의 디지털 독립은 이상일뿐이라며 손 놓고 남의 도움만 기다릴 수는 없다. 우리 중년 세대는 이전 세대와는 또 다르다 생각한다. 모바일 뱅킹, 병원 예약 앱, 모빌리티 예매, 키오스크 결제 등 일상과 직결된 디지털 도구를 거부하지 않고 끊임없이 배우고 익힐 수 있는 세대이다.


완벽하게 다 알 필요는 없다. 낯선 화면 앞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이것저것 눌러볼 수 있는 최소한의 디지털 적응력과 용기를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야말로 내 노년과 부모님의 오늘을 조금 더 당당하고 주체적으로 지켜내는 무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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