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에 얻은 귀여운 별명

별명인지? 오명인지?

by송주

나는 학원 영어 강사 일과 유아 시설 영어 특활 강사 일을 병행하고 있다. 학원 수업 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유아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게 내 일이다. 어린 연령일수록 교사가 챙겨가야 할 수업 도구들이 많다. 그중 하나가 블루투스 스피커이다. 노래로 영어를 익히는 것 역시 중요한 수업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자꾸 그 중요한 물건 챙기는 것을 잊는다.


지난 수요일이었다. 출근을 위해 주차장에 내려온 후 허전한 느낌에 뭔가 빠진 것을 알았다. 역시 슬픔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블루투스 스피커를 충전기에 꽂아 둔 채 놓고 나온 것이다. 집에 올라갔다 내려오면 시간 내 도착하기 빠듯할 것 같았지만 선택지가 없었다.


결국 정해진 시간 보다 조금 늦게 유치원에 도착했다. 송구스러운 듯 첫 수업인 5살 반 교실 문을 조심히 열었다. 아이들은 당연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담임 선생님께 "늦어서 죄송해요"라고 말한 후 수업을 시작하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 아이들은 순수하고 때론 거침이 없이 호기심이 강하다.

"선생님 왜 늦었어요?"

한 아이가 묻자 돌림 노래를 부르듯 모두 같은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꽤 불쌍한 표정으로 사실을 이야기했다.

"오늘 친구들 만나러 오는 데 그만 스피커를 집에 두고 온 거야. 그래서 다시 집에 갔다 오느라 늦었어. 친구들이 이해해 줄 수 있지?"

내 불쌍한 표정에 아랑곳 않고 아이들의 천진한 질문이 이어졌다.


"그런데 왜 스피커를 놓고 온 거예요?"




'너네도 내 나이 되어 봐라' 하고 싶었지만 나는 정제된 언어로 대답을 이어 나갔다.

"선생님이 요즘 자꾸 깜빡하네. 이제 잘 챙겨 올게."

아이들은 굽신 거리는 내 표정이 재미 있는지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아이가 말했다.

"선생님 깜빡핑이구나."


핑! 우리나라에는 많은 핑들이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제작한 애니메이션인 "캐치! 티니핑"에 등장하는 요정들이다. 예를 들면 하츄핑, 사뿐핑, 뽀니핑 등 이렇게 핑이 붙은 작은 요정 등이 수도 없이 많다. 나이 47에 나는 이 귀여운 핑 대열에 합류한 셈이다. 하지만 슬프게도 '깜빡핑'이라니.


지난 7월 중순 아버님 생신을 맞아 돼지 갈비를 준비했다. 아버님 댁은 내가 사는 울산에서 차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함안이다. 차가 밀리기 전에 출발한다고 아침부터 서둘러 길을 나섰다. 함안 입구에 들어섰자 남편이 물었다.

"갈비는 챙겼지?"

아... 갈비는 우리 집 냉장고에 그대로 남겨진 채였다. 남편과 나는 서로에게 의미 없는 바카라임을 물으며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시댁으로 향했다.


샤워장에 수건을 안 가져간 적도 몇 번 있다. 그것도 샤워 마친 후에 생각이 난다면, 응가 후 휴지가 없는 것을 안 사람처럼 당황하게 된다. 하려고 했던 말이 기억나지 않거나 사람 이름이 금방 떠오르지 않아 "이", "그", "저"를 반복한 적도 있다. 또는 사물 이름이 생각 나지 않아 상대방과 스무 고개를 해야 했던 기억도 있다. 장을 보러 가면 꼭 한두 가지씩 필요한 물건을 빼 먹기도 했다.

결국 나이가 들면서 빼곡하게 채워진 건 휴대폰 달력이었다. 회의 날짜, 병원 예약 날짜는 당연히 입력해야 했고 심지어 학원 학생들 단어 시험 치는 날짜도 메모하지 않으면 잊고 넘어가는 날이 있었다.


40대 이후부터 정보처리 속도가 느려져 건망증이 심해진다고 한다. 부정할 수 없는 말이긴 하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건망증의 원인은 또 하나가 더 있다. 바로 뇌의 과부하이다. 너무 기억해야 할 것들이 많다.

가족들 생일, 주민 번호는 기본이고 제사와 어른들 생신도 잊으면 안 된다. 집안 냉장고에 떨어진 것은 없는지 체크해야 하고 공과금과 세금 역시 잊지 않고 제때 납부해야 하는 중요한 집안일이다. 그 외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기억해야 할 것들이 많다.

거기다 온라인 게임 업무에 관련된 일이라면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되니 더 신경을 써야 한다. 아마 나와 비슷한 처지의 많은 이들이 '깜빡핑'이라는 굴욕적인 별명의 주인공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상당히 복잡하다. 안주하지 않으려면 몸이 힘들고 뇌가 지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나이 뒤에 숨거나 바쁘다는 핑계로 건망증을 당연하게 여기기보다 몇 가지 노력을 해 보면 좋을 것 같다.

먼저 앞서 말한 메모 하기이다. 중요한 일은 물론이고 기억해야 할 일들을 습관적으로 메모한다면 뒤늦게 잊고 당황하는 일이 줄어들 것이다. 또 휴대폰 사용 줄이기이다. 휴대폰 영상에 몰두하다 주변 환경을 잊게 되는 경우가 있다. 목적을 가지고 휴대폰을 열었다가 해야 할 일을 잊고 영상을 보며 시간을 흘려 보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미리 준비하기이다. 서두르다 보면 실수가 생기는 법이다.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외출 준비나 출근 준비를 한다면 두고 가는 짐이 없을 것이다. 이런 노력이라면 나도 "깜빡핑"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잘 실천해 보고자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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