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와 장사가 어울릴까?

글 안 쓸 핑계와 장사는 어울린다.

by송주

나는 유치원과 학원을 오가며 영어 수업을 하고 있는 영어 강사이다. 벌써 15년 째다.

재미? 글쎄? 여태 이 일을 하고 있는 걸 보니 나와 잘 맞는 것 같다.

불혹의 중반 땅을 향해 쳐지는 얼굴을 화장으로 감춘다. 요즘은 안 하던 볼터치도 한다. 한 살이라도 어려 보이고 싶은 발악을 광대뼈에 살짝 묻혀 본다. 그렇게 출근해서 하는 첫 수업은 나름 신난다. 하지만 마지막 수업 때 즈음 시간이 흐르면 판소리 명창처럼 목이 갈라지고 얼굴은 반골룸 상태로 변하곤 한다. 여하튼 잠깐이라도 행복했으니 괜찮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었다. 그러다 글쓰기를 만났다. 난 사실 글을 쫌 잘 쓰는 편이었다. 내 이미지가 좀 푼수라 오랜 기간 나는 저평가되어 있었다. 하지만 잘하는 것도 없었지만 못 하는 것도 없는 인간이 바로 나였다. 아쉬운 건 나만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글쓰기는 내가 20대에 배운 아르헨티나 탱고만큼 재미있었다. 내 이야기가 세상에 나오고 사람들이 읽고 공감해 주었다. 찌릿한 전율이 온몸에 퍼졌다. 드디어 저평가의 늪에서 나를 알아주는 분야가 생겼구나 좋기만 했다. 오마이 뉴스에도 글을 올리게 되었고 소정의 원고료는 나를 움직히게 하는 강한 동력이 되었다.

그러던 중 삼촌에게서 사업 제의를 받았다. 삼촌은 지역의 유명한 갈빗집 대표이다. 나는 삼촌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갈빗집 중 한 군데를 인수하게 됐다. 평일에는 본업인 강사 일을 하고 주말에는 갈빗집에서 손님을 맞은 지 7개월에 접어들었다. 장사를 해 보니 이 또한 나름 재미있었다. 왜냐하면 우려했던 적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단골손님이 많아지고 감사의 마음 역시 드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글쓰기 영감이라는 게 떠오를 시간이 없어졌다. 기계처럼 일하다 저녁에 꼬꾸라지는 삶..

적당한 결핍과 아픔은 글을 쓰는 이에게 좋은 식량과 같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팔자에도 없는 갈빗집 여사장이 되면서 사는 게 치열해져 버렸다. 육아와 집안일 둘다에 무지했던 남편을 만나 개고생 하며 맞벌이와 자기 계발을 해 낸 지난 세월 역시 결코 편한 것을 아니었다. 하지만 원망하고 푸념했던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면 난 그저 평범했다. 나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사는 거였다. 치열하게 말이다. 나 역시 그 과정 위를 걸었을 뿐이다. 더군다나 내게는 언제나 등을 내준 부모님이 계시질 않았던가?


손님을 웃는 얼굴로 응대하고 좋은 식사와 환경을 제공하기에 여념이 없어졌다. 가끔 예상치 못한 상황에 비련의 여사장처럼 울기도 했다. 하지만 그 상처가 글의 영감을 제공해 주진 못했다. 몸은 바빠 힘든데 전보다 생활은 여유 있어졌다. 역시 등이 따시면 글감이 안 떠오른 건가 하는 생각도 했다. 퇴근 후 글 읽다 잠들고, 글 쓰다 잠드는 생활이 이어지다 지다 보니 시간이 없어 글 못쓴다는 핑계가 절로 나온다. 암만해도 나는 깜냥이 부족한 것 같다. 그럼에도 오늘은 마음 잡고 한번 써 본다. 부라보 마이 라이프 ~

숯방에서 남몰래 쓰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