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아들과 심신 미약 엄마
우울과 불안이 덮쳐 휘청 거리 던 때 아들을 위해 살고자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했다. 원인 모를 심장 두근거림 입마름은 이상 없음이라는 진단 후 더 심해졌다. 어린 아들을 두고 잘못될까 하는 불안은 눈덩이를 굴리듯 커져만 갔다.
티브이에서만 보던 신병이 난 건지 별별 생각이 다 들던 그때 내과에서 나를 보낸 곳은 신경 정신과였다.
"내과에서는 이상이 없대요. 왜 이런지 모르겠어요. 흑흑"
그때까지 우울이나 공황장애는 자살을 부추기는 병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저는 전혀 죽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살고 싶고, 낫고 싶어서 왔는데 왜 우울증인가요?"
이해할 수 없었다. 죽고 싶어야 우울증 아닌가? 우울에 대한 막연한 내 정의였다. 하지만 아들만 생각했다. 설사 의사가 돌팔이였다 치더라도 그의 진단을 믿어야 했다. 나는 그만큼 절박했다.
의사는 돌팔이가 아니었고 치료 후 증상은 차차 나아졌다. 첫 증상이 시작된 곳이 고속도로라 한동안 고속도로 운전은 하지 못했지만 가슴 두근거림과 입마름이 사라지니 살 것 같았다. 아이 둘을 낳고 재취업 후 열심히 달렸다. 밖에서는 경력을 쌓으려 애를 썼고 안으로는 가정 울타리를 탄탄히 메워 갔다. 딸자식 잘못 둔 죄로 친정엄마의 고생 역시 백과사전 한 권 분량은 될 것이다. 그럼에도 퇴근 후 화장실도 못 간채 주방으로 돌진하는 일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엄마라는 거룩한 단어는 현실 속에서 실로 치열했다.
그리고 보통의 하루처럼 보이는 내 치열한 일상을 먹고 자란 아들은 19살이 되었다. 고3이다.
대학 진학 포털 사이트에 아들의 성적표를 업로드하는데 19년 전 그 증상이 올 것만 같았다. 아들 때문에 살았다며 이 무슨 멍멍이 소린지 모르겠지만 나는 떨고 있었다. 아들의 성적이 저렴해 어떤 기대도 하지 않는다 자신했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 나는 또 심장이 뛰고 입이 마르기 시작했다.
본 게임은 시작도 전인데...
심신이 미약한 고사미 엄마는 이미 이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