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에서 배운 인사와 호칭
"안녕하세요."
아이가 내 친구를 보고 인사했다. 인삿말과 함께 가볍게 목례를 하면서 두 손은 가슴 앞에 곱게 모으고 있었다. 태국에서 태어나 태국 학교만 다녀본 아이에게는 자연스레 밴 몸짓이었다. 인사는 한국말로 하면서 손으로는 태국식 인사를 하는 모습이 귀엽고 재미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아이에게는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아이에게는 인삿말과 몸짓이 원래 한 세트였던 것이다.
스승의 날 행사, 혹은 불교 기념일에 스님을 모셔놓고 하는 행사에서는 조금 더 낯선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선생님이나 스님은 의자 또는 높은 곳에 앉고, 아이들은 그보다 낮은 바닥에 앉는다. 낮은 바닥에서도 두 다리를 가지런히 한쪽으로 모으고 몸을 더욱 낮춘다. 처음에는 왜 저렇게까지 하지 싶었다. 그런데 자꾸 보다 보니 몸의 높이를 낮추는 것 자체가 하나의 말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존중한다는 말을 굳이 꺼내지 않아도 몸으로 먼저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누군가보다 내가 낮은 곳에 앉는 것.
두 손을 모으는 것.
고개를 숙이는 것.
태국에서 사람을 대하는 법을 바라보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말보다 몸이었다.
인사와 더불어 사람을 부르는 방식도 조금 달랐다.
"이모, 여기요."
"아줌마, 이것 좀 주세요."
한국의 식당이나 가게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일하는 분에게 '사장님' 같은 호칭을 쓰거나 '저기요' 처럼 호칭을 쓰지 않은 채 부르기도 하지만 단골이나 친근한 가게에서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 낯설지 않다. 그래서 처음 태국에서 식당에 갔을 때 다른 사람들이 종업원을 부르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랐고, 이모나 아줌마에 해당하는 태국어 단어도 아직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똑같은 단어로 부르는 걸 들었다.
"피(พี่)"
원래 나보다 나이가 많은 형제자매를 부르는 호칭이다. 언니이기도 하고 오빠이기도 하다. 이후로도 유심히 관찰했다. 나보다 확연히 어려보이는 직원을 부를 때는 동생을 뜻하는 '넝(น้อง)'을 쓰기도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피'라고 불렀다. 한국에서는 모르는 사람을 부를 때 잠깐 고민하게 된다.
이모, 아줌마, 사장님, 아니면 그냥 저기요?!
그런데 태국에서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는 그냥 '피'라고 부를 수 있었다. 정확한 이름도, 직업도, 나와 어떤 관계인지도 몰라도 괜찮았다. 태국어의 호칭이 사람 사이에 놓은 빈 공간을 조금 쉽게 건너게 해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는 관계를 확인한 뒤 그에 맞는 호칭을 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태국에서는 호칭을 통해 상대와 나 사이의 관계를 먼저 가늠하는 느낌이었다. 처음 만난 사람이어도 형제자매의 호칭을 빌려 서로를 부를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태국의 전통 인사인 와이(ไหว้)도 비슷하다.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는 순간, 우리는 말보다 먼저 상대를 어떻게 대할지 몸으로 표현한다. 아이도 마찬가지다. 아이는 어느 것이 한국식이고 어느 것이 태국식인지 따로 구분하지 않는다. 자신이 아는 선에서 존중을 표현할 뿐이다.
얼마 전 한국에서 지인이 방콕에 왔다. 오랜만에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데 내 손이 먼저 가슴 앞으로 올라왔다. 깜짝 놀라 어색하게 손을 내렸지만 지인은 웃으며 나를 따라 두 손을 모아 주었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게 이곳의 방식이 어느새 내 몸에도 남아 있었다.
★ 이방인의 메모
태국의 전통 인사인 와이(ไหว้)는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 고개를 숙이는 동작이다. 상대방의 나이나 지위, 상황에 따라 자세와 손의 위치가 달라질 수 있다. 몸 하나로 상대방과 나 사이의 거리와 존중을 표현하는 셈이다.
호칭도 마찬가지다. 태국어에서 피(พี่)는 나이 많은 형제자매를 뜻하는 말로, 처음 만난 사람이나 가게 직원에게도 자연스럽게 쓰인다. 나보다 어려 보이는 상대에게는 동생을 뜻하는 넝(น้อง)을 쓴다. 피와 넝 만큼 자주 쓰이지는 않지만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는 ป้า(빠, 이모·아주머니), ลุง(룽, 아저씨·삼촌), ยาย(야이, 할머니) 같은 친족 호칭을 실제 친족이 아닌 사람에게 사용할 수 있다. 호칭은 상대의 나이와 상황, 친밀도 등에 따라 달라진다. 이름을 모르는 사람과도 가족처럼 부를 수 있는 언어 구조가 처음부터 친근한 관계의 틀을 만들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