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 같은 색으로 학교를 다닌다는 것

태국 학교의 운동회, 낄라씨(กีฬาสี)

bysafari njema

우리 아이들은 골드팀이다.


태국의 운동회는 '낄라씨(กีฬาสี)' 라고 부른다. 색깔별로 팀을 나누어 경기를 하는 행사이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는 골드, 에메랄드, 사파이어, 아메시스트 네 개의 팀이 있다. 아이들은 반이나 학년과 상관없이 네 가지 색 중 하나에 속한다. 한 번 정해진 색은 졸업할 때까지 바뀌지 않는다. 형제자매가 같은 학교에 다닌다면 같은 색에 속하고, 부모들도 아이들과 같은 색 팀으로 참여한다.

1학년부터 12학년까지 있는 학교라 평소에는 모르는 얼굴이 훨씬 더 많다. 그런데 낄라씨가 시작되면 달라진다. 노란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어린아이부터 훌쩍 큰 아이들, 그리고 선생님과 부모들까지. 노란색 옷을 입은 사람은 모두 골드팀이다.

낄라씨 기간에 학교에 들렀을 때였다. 아직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우리 아이가 한참 더 큰 언니들 사이에 끼어 있었다. 나를 발견한 아이가 달려왔다. 그리고는 손을 잡아 끌며 함께 있던 언니들을 소개했다.


"엄마, 이 언니들도 골드팀이야."


우리 아이보다 족히 대여섯 살은 많아 보이는 아이들이었다. 거리낌없이 동급생 마냥 어울려 노는 모습이 자연스러웠다. 낄라씨가 만들어내는 풍경이었다.


9월, 바야흐로 운동회의 계절이다. 1학기 말 시험을 앞두고 학기의 큰 행사 중 하나인 운동회가 다가왔다. 운동회라고 하면 나는 청군과 백군이 먼저 떠오른다. 반별로 색이 나뉘어 서로 경쟁하며 달리고, 목이 터져라 응원하던 아이들. 한 편은 승자가 되고 또 다른 한 편은 패자가 되는 경기에 웃고 울었던 날들.


낄라씨는 한국의 운동회처럼 하루에 끝나지 않는다. 12개 학년이 학년과 성별에 따라 여러 종목의 경기를 치르다 보니 거의 일주일 내내 운동회가 계속된다. 그런데 경기보다 더 공을 들이는 것이 따로 있다. 퍼레이드다. 마지막 날 아침, 각 팀이 그해의 컨셉을 정해 꾸민 퍼레이드가 펼쳐진다. 학생은 물론이고, 선생님과 교직원, 학부모까지 같은 색과 컨셉으로 꾸미고 운동장에 등장한다. 올해 골드팀의 컨셉은 서커스였다. 아직 우리 아이들은 저학년이라 퍼레이드를 준비하는 중고등학생 아이들의 모습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 대신 학부모 단톡방에 올라오는 사진으로 그 모습을 보았다. 이미 깜깜해진 저녁이었다. 아이들이 서커스 장막을 색칠하고 있었다. 커다란 코끼리를 만들고 삐에로 우산도 준비하고 있었다. 퍼레이드를 위해 일주일 내내 만들고 또 만들었을 것이다. 퍼레이드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지만 아이들의 낄라씨는 이미 시작된 셈이었다.


첫째 아이는 학교 행사에 그리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편이 아니었다. 그런데 4학년이 된 올해, 처음으로 계주에 자원했다. 경기가 시작되고 아이가 달리는 모습을 나도 덩달아 조마조마하게 바라봤다. 골드팀 아이들이 차례로 바통을 이어 받았다. 결과는 은메달이었다. 금메달을 놓친 것이 아쉬웠는지 아이는 경기가 끝난 뒤에도 계속 그 이야기를 했다.


"우리 내년에는 꼭 금메달 따자!"


한 팀이 되어 달린 아이들은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연신 땀을 닦으면서도 한마디씩 보탰다. 내년에는 더 잘하자고, 다음에는 꼭 이기자고. 결의에 찬 얼굴들이 발그레했다.


경기장 한 발치 뒤에는 또 다른 골드팀이 있었다. 간식 테이블을 지키고 서 있는 학부모들이었다. 경기장은 아이들의 세상이었다. 부모들은 조금 떨어진 뒷편에서 기다렸다. 아이들의 긴장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은마음으로 응원 소리를 보탰다. 경기가 끝나면 시원한 물과 간식을 들고 땀 흘리는 아이들에게 달려갔다.


"덥지? 물 마셔. 잘 했어, 잘 했어."

"일단 이거 먹어. 멋지다, 너희들."


아이들이 몰려오면 부모들도 덩달아 분주해졌다. 승리에 기뻐하는 아이들도, 아쉬움에 안타까워하는 아이들도 모두 제 자식 같았다.

골드팀 학부모 단톡방에서는 낄라씨가 시작되기 전부터 모금이 이어졌다. 학교에서 요청한 것도, 학교 관계자가 관리하는 것도 아니었다. 학부모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단톡방이었다. 십시일반 모인 돈으로 낄라씨 기간 동안 아이들에게 줄 간식과 음료수를 사고, 퍼레이드에 필요한 소품과 장식을 준비했다.


문득 아주 오래전 내가 어렸을 때의 운동회가 떠올랐다. 그 시절 동네의 운동회는 마을 잔치에 가까웠다. 부모는 물론이고 할머니, 할아버지, 동네 어른들까지 모였던 학교 운동장. 사람들이 함께 준비한 음식을 나눠 먹으며 왁자지껄하게 하루를 보냈던 날.

그로부터 삼십 년도 더 지난 지금, 태국의 낄라씨를 보며 그 날을 떠올린다. 아이들이 낄라씨를 통해 무엇을 배우는지는 각자 다를 수 있다. 다만 뒤에서 기꺼이 한몫 보태는 부모들의 마음은 알 것 같다. 아이들이 이 시간을 오래 기억했으면 하는 마음일 테다.


"그때 우리 골드팀이 말이야..."


언젠가 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추억하며 웃을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말이다.


올해도 낄라씨의 마지막 날인 금요일 아침, 네 팀의 퍼레이드가 시작된다. 골드팀의 피켓이 앞장선다. 삐에로가 지나가고 마술사가 묘기를 부린다. 알록달록한 서커스 장막 뒤로 화려한 회전목마와 커다란 코끼리도 따라온다. 색색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운동장을 가득 채운다. 노란 옷을 입은 사람들 사이에 나도 노랗게 물들어 서 있다.


오늘 하루만큼은, 우리도 같은 팀이다.


KakaoTalk_20260915_142225513.jpg<올해의 골드팀>




★ 이방인의 메모

낄라씨(กีฬาสี)는 태국 학교의 색깔 체육대회로, 태국 학교에서 널리 볼 수 있는 연례 행사다. กีฬา(낄라)는 스포츠, สี(씨)는 색깔을 뜻한다. 학생들을 여러 색깔의 팀 또는 house로 나누어 육상, 구기종목, 수영, 줄다리기 등 다양한 경기를 치른다. 학교에 따라 팀의 수와 색깔, 경기 방식은 조금씩 다를 수 있다.

경기뿐 아니라 퍼레이드와 응원전도 낄라씨의 중요한 부분이다. 학생들이 각 팀의 색깔과 주제에 맞춰 퍼레이드와 응원을 준비하며, 학교에 따라 여러 날에 걸쳐 경기가 진행되기도 한다.

대부분 학부모와 교사도 행사에 함께 참여한다. 응원과 퍼레이드에 참여하거나, 부모 줄다리기처럼 직접 경기에 나서는 학교도 있다. 그래서 낄라씨는 단순히 승패를 겨루는 체육대회라기보다 학교 구성원이 함께 즐기는 공동체 행사의 성격을 갖는다.

한 학년이 아니라 전 학년이 함께 참여하고, 고학년이 저학년을 이끌고 함께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행사의 중요한 부분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