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세 시간
"맥주 한 잔 주세요."
"안 돼요."
"왜요? 떨어졌어요?"
종업원의 대답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다. 태국어를 거의 못하던 때였다. 맥주 재고가 없는 것으로 나 혼자 결론을 내렸다. 알코올을 한 모금만 넘겨도 얼굴이 금세 벌겋게 달아오르는 사람이라 좀처럼 낮술을 즐기지 않는다. 그날은 기분 좋은 일이 있어 큰맘 먹고 주문했는데 하필 맥주가 없다니. 아쉬운 마음을 떨치기 어려웠다. 그때는 몰랐다. 맥주가 떨어진 게 아니라 시간이 떨어졌다는 것을.
한 번은 쇼핑몰에서 점심을 먹고 장을 보러 슈퍼마켓에 갔다. 평소처럼 카트를 밀며 생필품과 식재료를 하나씩 담았다. 계산대로 향하다가 낯선 구역을 발견했다. 한참 손님이 많은 시간인데 그곳만 조용했다. 판매대와 냉장고가 모두 장막이나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안쪽에 진열된 물건은 모두 주류였다. 재고 파악을 하는 중인가 생각했다. 그렇다고 손님들을 눈앞에 두고 팔 물건을 가려놓다니 이상했다. 그때도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한참 뒤에야 알았다. 태국에는 오후 2시와 5시 사이, 술을 살 수 없는 시간이 있다는 것을. 일반 식당과 소매점에서는 이 세 시간동안 주류를 판매할 수 없었다. 가게가 문을 닫은 것도 아니고, 술을 마시는 것 자체가 금지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시계가 오후 두 시를 가리키면 술은 살 수 없었다. 왜 하필 오후 2시부터 5시 사이였을까. 이 규정의 뿌리는 197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군사정부 시절, 공무원들이 점심시간에 술을 마시고 근무지로 돌아오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처음에는 국가 기강을 위한 조치였던 셈이다. 그로부터 5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태국은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관광지가 되었고,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이 태국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런데도 오후의 규칙은 그대로 존재했다.
2025년 말, 변화가 시작됐다. 관광과 경제 활성화를 위해 오후 2시부터 5시까지의 주류 판매를 180일 동안 시험적으로 허용하기로 했다. 오래된 규정을 한꺼번에 없애기 보다는, 일단 열어보고 지켜보기로 한 것이었다. 그리고 2026년 5월, 시범 운영 기간이 끝나자 오후의 세 시간은 정식 판매 시간에 속하게 되었다. 오전 11시부터 자정까지. 이제 오후는 빈칸을 채우고 하나가 되었다.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오후의 세 시간 안에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을까.
처음 규칙을 만든 사람들.
그 규칙을 지키며 살아온 사람들.
2시가 되기 전 서둘러 맥주를 사던 사람들.
때를 놓쳐 5시가 되기만을 기다리던 사람들.
나는 술을 살 때 여전히 한 번쯤 시계를 들여다본다. 오후 세 시. 이제는 아무 의미 없는 시간이지만, 나만 알고 있는 비밀처럼 지나버린 시절을 떠올린다.
★ 이방인의 메모
태국에서는 오랫동안 주류 판매시간이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었다. 일반 식당과 소매점에서 술을 살 수 있는 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 그리고 오후 5시부터 자정까지였다. 오후 2시부터 5시 사이의 세 시간은 판매가 금지됐다. 다만 호텔, 허가받은 유흥업소, 국제공항 승객 구역 등은 별도 규정에 따라 예외가 적용됐다.
2025년 12월 3일부터 태국 정부는 일반 판매장소에서도 오후 2시~5시 주류 판매를 180일간 시범 허용했다. 관광산업 활성화와 외식업계의 요청이 배경이었으며, 이 기간 동안 경제적·슬롯적 영향을 평가했다. 2026년 5월 29일부터는 이 시간대가 정규 판매시간에 편입되어, 현재 일반적인 주류 판매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자정까지로 이어진다.
현재도 자정 이후부터 오전 11시까지는 일반적 판매 제한이 여전히 존재한다. 또한 선거일, 주요 불교 명절, 특정 종교 관련일에는 별도의 주류 판매 금지가 적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