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아이들의 주말문화
주말 늦은 아침을 먹고 동네 쇼핑몰 맨꼭대기층으로 간다. 아래층의 식당가나 매장들과는 다른 공기가 흐른다. 통로 양쪽으로 학원들이 늘어서 있고, 그 앞 통로에는 부모들이 빽빽하게 앉아 아이를 기다린다. 휴대폰을 보는 사람, 커피 한 잔 하는 사람, 다른 부모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 영어, 수학, 음악, 미술, 발레, 태권도, 인라인까지 아이들이 배울 수 있는 것들이 한 층에 모두 모여 있다. 한 학원의 수업이 끝나면 또 다른 학원으로 뛰어 들어가는 아이들이 보인다. 바깥으로 나갈 일이 없다. 이 층 안에서 하루가 돌아간다.
우리집 아이들도 올해 들어서 쇼핑몰에 있는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사교육에 관심이 많지 않은 엄마지만, 예체능 교육까지 집에서 바카라임지기엔 버거워서 아이의 요청에 따라 학원을 찾았다. 처음에는 낯설었다. 학원이 쇼핑몰 안에 있다는 것도, 한 층에 이렇게 모여 있어 온종일을 보낼 수 있다는 것도. 한편 생각해보면 꽤나 합리적이다. 이 나라에서 대낮에 바깥을 걷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오토바이가 스쳐 지나가는 인도는 좁고 울퉁불퉁하고, 무엇보다 덥다. 아마 이런 환경이 쇼핑몰에 학원가를 만드는 데 한몫하지 않았을까.
솔직히 많이 편리하다. 동선이 짧아서 시간을 아낄 수 있고, 중간에 식사시간이 걸려도 건물 안에서 해결할 수 있다. 은행, 우체국, 미용실, 클리닉, 슈퍼마켓 등 생활에 필요한 많은 장소가 이미 쇼핑몰 안에 있다. 아이들이 학원에 있을 동안 나는 주중에 하지 못했던 일들을 처리하기도 한다. 시간이 남으면 서점에 가거나 영화를 볼 수도 있다. 햇볕이 뜨거워도 상관없고 비가 와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한국에서 쇼핑몰은 목적지가 되는 경우가 많지만, 태국에서는 때때로 생활 그 자체가 된다.
하지만 날씨가 좋은 날이면 쇼핑몰로 들어서는 발걸음이 아쉽다. 매일 덥긴 해도 조금이나마 시원한 바람이 부는 날, 비구름이 없이 하늘이 파란 날, 미묘하게 계절이 바뀌는 것이 느껴지는 날들이 있다. 그런 날엔 쇼핑몰보다는 바깥 바람을 쐬러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아이들은 계절을 느끼고 햇빛을 쬐며 뛰어놀아야 한다고 들으며 자란 기억이 내 몸 어딘가에 남아 있는 것이리라. 집 앞 공원에 가고 산바카라을 하고 자전거를 타고 놀이터에서 뛰어 놀았던 기억들. 하루 종일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창문 없는 건물 안에 머무는 아이들이 못내 안타깝다. 사계절 내내 같은 온도로 지내는 일상이 어쩐지 비현실적이기도 하다.
한국은 이제 가을이다. 하늘이 높아지고 바람이 선선해지는 계절, 아이들과 밖으로 나가기 좋은 날들이 이어지겠지. 가을바람이 여기까지 불어오진 않겠지만, 몸이 기억하는 대로 밖에 나가 뛰어놀고 싶은 마음이 더 커진다. 막상 건물 밖으로 나가면 맞닥뜨리는 뜨거운 공기에 금세 에어컨 바람이 그리워지고 말지만.
옳고 그른 건 없다. 이곳 아이들은 이곳의 방식으로 자란다. 환경이 다르면 삶의 모양도 달라지니까. 다만 어른이 되면 어쩔 수 없이 건물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질 테니까, 엄마로서의 욕심은 버리지 못했다. 아이들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자연을 좀 더 많이 만났으면 좋겠다. 내리쬐는 햇빛에 얼굴을 찡그려보는 것, 맨발로 흙을 밟아보는 것, 비를 맞으며 물장난을 치는 것, 나무에 매달리고 나뭇잎을 주워보는 것, 미세한 계절의 냄새를 맡는 것. 그 경험들이 어디에든 쌓일 것이라 믿으니까. 그저 아이들에게 가능한 한 많은 풍경을 보여주고 싶다. 에어컨이 있는 쇼핑몰의 풍경도, 햇볕 아래 펼쳐진 공원의 풍경도. 에어컨의 온도에는 민감하면서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의 온도는 잊어버리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오늘도 아이들은 쇼핑몰에서 수업을 받고 있다. 나는 복도 한켠에 앉아 기다린다. 날씨예보를 보니 비구름 없이 맑다고 한다. 수업이 끝나면 돌아가는 길에 잠깐 바깥 바람을 쐬러 가야겠다. 아이들이 오늘 하루의 바람을 기억할 수 있도록.
★ 이방인의 메모
방콕에서는 동네마다 대형쇼핑몰을 찾을 수 있다. 지금도 끊임없이 새로운 쇼핑몰을 건설 중이다. 방콕의 쇼핑몰은 단순히 쇼핑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식사, 영화, 병원, 마트, 문화 행사까지 한 건물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생활 거점이다. 가족 단위로 주말을 통째로 쇼핑몰 안에서 보내는 모습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특히 덥고 습한 기후 때문에 한낮의 야외활동이 쉽지 않은 방콕에서는 냉방이 잘되는 쇼핑몰이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공간이 되었고,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생활 반경이 그 안으로 모이게 되었다.
아이들의 학원이 쇼핑몰에 모여 있는 것도 이런 생활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쇼핑몰에 가서 아이는 수업을 듣고 부모는 그 안에서 기다리거나 볼일을 보다가 함께 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동선. 덥고 복잡한 도시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만들어진 하루의 방식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