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어른의 자리

나는 어떤 어른인가

bysafari njema

"엄마, 오늘 학교에서 총기 사고에 대비하는 대피훈련 했어."


저녁을 먹던 중 아이가 꺼낸 말에 잠시 멍해진다. 얼마 전부터 등교시간에 아이들은 모두 가방 검사를 받는다. 선생님들이 아이들의 가방을 하나씩 열어 총기를 비롯한 위험한 물건이 있는지 확인한다. 가방 안을 살피는 일과 위험한 순간에 아이들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도록 가르치는 일. 학교의 하루에 전에는 없던 긴장이 하나 더해졌다. 분주하고 불안한 분위기를 상상하다가 문득 생각한다.


우리는 아이들을 무엇으로부터 지키고 있는 걸까.


이 달 초, 논타부리의 한 학교에서 열다섯 살 학생이 총을 들었다. 처음 뉴스를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총이었다. 총기 소지가 불법인 나라에서 자란 나에게는 너무 낯선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학교라는 공간, 아이들이 공부하고 친구들과 웃고 떠들어야 할 곳에서 총성이 울렸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며칠 동안 관련 기사를 읽을수록 자꾸 다른 부분을 떠올리게 됐다.


그 아이는 총을 들기 전까지 어떤 아이였을까.


사건은 학교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학교에 오기 전 이미 가정에서 총격이 있었고, 이후 학교에서도 비극이 이어졌다. 무엇이 그 아이를 그렇게까지 몰고 갔는지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여러 증언들이 충돌하고 있는 만큼 사건의 원인을 함부로 결론 내릴 수는 없다. 다만 하나의 궁금증이 일었다.


아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주변의 누군가는 알고 있었을까.


아이들에게는 평소와 다른 모습이 나타날 때가 있다. 갑자기 말수가 줄기도 하고, 방 안에만 있으려 하기도 한다. 학교에 가기 싫다고 하기도 하고, 평소와 다른 표정으로 낯선 말을 불쑥 내뱉기도 한다. 전에는 좋아하던 것을 급작스럽게 싫어하기도 한다. 우리는 그것을 사춘기라고 부르기도 하고, 예민한 시기라고 넘기기도 한다. 아이들은 원래 그렇게 크는 거라고 생각하면서. 조금만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믿으면서.

나도 아이를 키우면서 그런 말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른다. 아이가 울면 달래고, 떼를 쓰면 타이르고, 입을 다물면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본다. 하지만 아이의 마음속까지 들여다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겉으로 드러나는 문제가 생기고 나서야 지나간 장면들을 다시 꺼내어 하나씩 거꾸로 해석하게 된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왜 저랬을까.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조금 더 물어봤어야 했던 것은 아닐까.


총은 눈에 보이는 물건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아이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가는 것들은 가방을 열어본다고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오히려 더 어려운 질문이 남는다.


한 아이가 그렇게까지 무너지는 동안 주변의 어른들은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


사건을 둘러싼 여러 보도를 읽으며 부모의 역할과 학교의 바카라임에 대해 다시 한 번 곱씹어 보게 됐다. 특히 아이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지, 주변의 어른들이 그것을 얼마나 알아차리고 있었는지는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질문이었다. 물론 한 사건의 원인을 한 사람의 부모나 학교에 돌릴 수는 없다. 아이의 행동에는 수많은 이유와 시간이 겹쳐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른의 바카라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려움에 처한 아이들이 보내는 신호를 조금 더 일찍 발견하고, 도움이 필요한 순간 손을 내밀 수 있는 환경과 시스템이 있다면 어떨까. 어쩌면 조금 늦은 질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음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는 꼭 물어야 하는 질문일 것이다.

아이들은 혼자 자라지 않는다. 부모가 키우고, 교사가 가르치고, 친구들과 부딪히고, 슬롯를 보면서 자란다. 그래서 아이에게 무언가 어려움이 생겼을 때, 그 이유를 아이에게서만 찾아서는 안 된다. 그 아이를 둘러싼 어른들은 무엇을 보았는지, 무엇을 놓쳤는지 함께 돌아봐야 한다.


나는 오늘 아이에게 어떤 어른이었을까.

바쁘다는 이유로 대충 들었던 말이 있지는 않았을까.

별일 아니겠지 하고 넘겼던 표정이 있지는 않았을까.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하지 못한 말을 묻지 않고 지나친 저녁이 있지는 않았을까.

뉴스 속 이야기가 낯설지 않은 이유는, 어쩌면 나 역시 그런 어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논타부리의 학교에서 울린 총성은 너무 컸다. 그 소리가 여전히 울리고 있는 더 작은 신호들까지 모두 묻어버리지 않기를 바란다. 오늘도 아이는 가방을 열어 보이고 학교 안으로 들어간다. 나는 한동안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저 아이에게 나는 충분한 어른인가.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그 질문을 잊지 않는 것부터가 어른의 자리를 지키는 일일 거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