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 군사부일체

어머니의 날

bysafari njema

8월 12일은 어머니의 날이다. 이미 한 달 전부터 온 도시가 이를 알려준다. 거리의 현수막이, 가게 쇼윈도가, 건물 로비에 차려진 단상이. 도시 곳곳이 연한 파란색으로 물든다. 태국의 어머니의 날은 시리킷 왕비의 생일날로, 파란색은 왕비가 태어난 요일인 금요일을 상징한다. 상점마다 파란 리본과 장식으로 꾸며지고, 도로나 가로등에도 파란 깃발이나 팻말이 내걸린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날짜를 헤아리지 않아도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매년 같은 시기가 오면 같은 색이 계절처럼 도시의 풍경을 바꾸고 있으므로.


올해 어머니의 날은 조금 다른 분위기로 맞이한다. 지난해 10월, 시리킷 왕비가 세상을 떠났다. 서거 후 처음 맞는 어머니의 날이다. 예년이라면 사남루앙 광장에 촛불이 켜지고 노래와 폭죽이 밤하늘을 수놓았을 테지만, 올해는 축제 분위기보다는 추모와 애도의 의미가 더해진다. 도시는 여전히 파란 빛으로 물들었지만 조금은 다른 공기로 느껴진다.


한국의 어버이날은 부모님 두 분을 함께 기리는 날이지만, 이곳에서는 어머니의 날과 아버지의 날이 따로 있다. 라마 9세 때 왕과 왕비의 생일에 맞추어 정해진 날이다. 왕이 나라의 아버지, 왕비가 나라의 어머니라고 생각하니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말이 떠오른다.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는 곧 하나라는 뜻이다. 다른 나라, 다른 시대의 말이지만 이곳의 풍경 앞에서는 낯설지 않은 말이 된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두 날의 온도 차이를 뚜렷하게 알게 되었다. 아버지의 날이 되면 꽤나 성대한 행사가 열린다. 부모를 학교로 초대하고, 아이들이 공연을 하고, 함께 의식에 참여한다. 아이들은 자신의 아버지에게 꽃이나 뱃지를 건네며 감사의 마음을 표현한다. 그날을 앞두고 학교와 거리 곳곳이 왕을 상징하는 노란색으로 꾸며지고, 사람들도 노란색 옷을 입는다.

그러나 어머니의 날에는 보통 편지 한 장이 전부다. 꼼꼼하게 접힌 종이 안에 서툰 글씨로 꾹꾹 눌러쓴 짧은 문장들. 물론 아이들이 삐뚤빼뚤 만들어 온 편지는 고맙고 사랑스럽다. 그럼에도 아버지의 날과 어머니의 날 사이 어딘가에서 서운한 마음이 슬쩍 드는 것도 사실이다. 왕이 중심인 나라에서 왕의 날과 왕비의 날이 꼭 같은 모습일 수는 없다는 것을 이해하면서도 말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가는 슬롯나 환경 속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부모를 정의한다. 어떤 사람에게 부모는 가족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스승이며, 또 어떤 사람에게는 왕과 왕비가 부모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태국에서 만난 어머니의 날과 아버지의 날은 그래서 조금 더 넓은 의미를 품고 있는 듯하다. 한 사람의 사적인 존재인 부모를 넘어, 나라의 어머니와 아버지까지 함께 기리는 날이니까.


내가 한국에서 지내며 익숙하게 보아온 어버이날과는 조금 다르지만, 결국 그 마음의 시작은 비슷한 곳에 있다고 믿는다. 나를 있게 해준 사람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것, 그리고 내가 받은 사랑을 기억하는 것. 그 마음을 기억하며 올해도 아이들이 가져올 편지 한 장을 기다려본다. 이번에는 조금 덜 서운한 마음으로.


KakaoTalk_20260813_133125911.jpg추모의 의미일까? 올해는 파란색 장식도 많지만 흰색으로만 장식해 놓은 공간도 많다.





★ 이방인의 메모

태국의 어머니의 날 8월 12일, 아버지의 날은 12월 5일이다. 어머니의 날에는 말리(ดอกมะลิ), 즉 재스민을 전통적으로 선물한다. 순수함과 어머니의 사랑을 상징하는 꽃이다.


태국에서는 요일마다 정해진 색이 있다. 일요일은 빨강, 월요일은 노랑, 화요일은 분홍, 수요일은 초록, 목요일은 주황, 금요일은 파랑, 토요일은 보라색이다. 힌두교의 행성 신앙에서 유래한 전통으로, 자신이 태어난 요일의 색을 평생의 행운색으로 여긴다.

이 전통은 왕실과도 연결된다. 라마 9세와 라마 10세 모두 월요일에 태어나 노란색이 왕실을 상징하는 색이 되었고, 시리킷 왕비는 금요일생이라 파란색, 수티다 왕비(라마 10세의 왕비)는 토요일생이라 보라색이 각각의 왕실 깃발의 상징색이 됐다. 왕실의 기념일에 사람들이 특정 색의 옷을 입고, 도시 곳곳이 같은 색으로 물드는 것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요즘은 매일 요일 색에 맞춰 옷을 입는 관행은 많이 사라졌지만, 왕실 기념일이나 국가 행사에서는 여전히 살아있다. 태국에서 어느 날 도시 전체가 하나의 색으로 물들어 있다면, 그 색의 의미를 한번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이 나라를 조금 더 가까이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