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에게 바치는 찬가
K-컬쳐의 기세가 대단하다. 외국에 살다보면 더 선명하게 느껴진다. 그 중 하나가 영화다. 예전에는 한국 영화가 일 년에 한두 편 개봉하면 반가웠는데, 이제는 한두 달에 한 편 꼴로 영화관에서 개봉작을 만날 수 있다. OTT로도 볼 수 있지만 영화는 역시 영화관에서 보는 맛이 있으니까. 덕분에 최근들어 자연스레 영화관을 찾는 횟수가 잦아졌다.
처음 태국 영화관에서 본 영화가 뭐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영화보다 더 강렬했던 기억이 있다. 영화 시작 전 2~30분 여의 광고 화면이 흐른 뒤 화면이 어두워졌다. 이제 영화가 시작하려나, 팝콘으로 뻗으려던 손을 멈추고 기대했던 찰나. 화면 가득 태국 국왕의 일생이 펼쳐졌다. 이어 경건한 노래가 영화관을 채웠다. 객석의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 가슴에 손을 얹고 노래가 끝날 때까지 화면을 바라보았다. 당황한 채 주변을 둘러보다가 허둥지둥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을 따라했다. 그 순간 이 나라에서 왕은 국가의 상징을 넘어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존재라는 사실을 비로소 실감했다. 나중에서야 그 노래가 왕을 향한 찬가(สรรเสริญพระบารมี)였다는 것을 알았다. 그 후 가끔 영화관을 찾을 때마다 태국의 문화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의식을 따라했다. 그러나 한번도 품어본 적 없는 감정이 궁금하긴 했다. 왕을 향한 존경이란 어떤 마음일까. 영화가 시작되기 전마다 나는 잠시 그 질문 앞에 서곤 했다.
태국에 산 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라마 9세 서거일 1주기을 맞아서 추모식과 장례식이 열렸었다. 그 때를 기억한다. 검은 옷을 입고 전국 각지에서 몰려와 끝없이 이어지던 조문 행렬, 왕궁 일대 도로를 가득 메우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사람들, 온 나라가 슬픔을 함께 견디던 풍경은 생경하다 못해 충격적이었다. 그들에게 왕은 국가의 원수라기보다 한 시대를 함께 살아온 삶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꽤 오랜만에 영화관을 찾았을 때는 또 다른 이유로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여전히 같은 노래가 흘렀지만 객석의 반응은 예전과 달라졌다. 이제는 관객들이 모두 일어나서 존경의 의식에 참여하지 않는다. 예전처럼 일어나지 않는 사람을 나무라는 이들도 없었다. 태국인의 문화를 무시하는 꼴이 될까봐 나는 여전히 눈치를 보는데도 객석에 앉아 그대로 영화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화면 속 국왕의 모습도 어느새 새로운 왕의 새로운 시대를 보여주고 있었다. 지금의 태국은 또 다른 시간을 지나고 있다. 변한 것은 음악이 아니라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9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타국에 살면서 내가 배운 점은 문화란 박물관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문화는 살아 있는 사람들과 함께 움직인다. 어제의 당연함이 오늘은 당연하지 않을 수 있고, 변하지 않을 것 같던 풍경도 어느 날 문득 달라져 있다. 그래서 나는 판단보다는 관찰하기를 택한다. 영화보다 먼저 시작되던 그 몇 분, 나는 왕의 모습이 아니라 한 슬롯가 변해가는 모습을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 이방인의 메모
태국에서는 왕실을 모독하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를 엄격하게 다룬다. 형법 제112조(일명 왕실모독죄)에 따르면 국왕, 왕비, 왕위 계승자 등을 모독하거나 비방한 경우 최대 15년의 징역형이 선고될 수 있다. 외국인일지라도 왕실에 관한 언행이나 지폐·사진 등을 다룰 때에 항상 예의를 지키는 것이 좋다. 이러한 작은 행동들이 태국 사람들과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는 기본 에티켓이라고 생각한다.
또 하나 흥미로운 문화는 매일 오전 8시와 오후 6시에 국가(플렝찻타이, เพลงชาติไทย)가 울린다는 점이다. 공원이나 관공서, 일부 공공장소에서는 음악이 흐르는 동안 사람들 대부분이 잠시 걸음을 멈추고 국가가 끝날 때까지 기다린다. 법적인 의무라기보다 오랫동안 이어져 온 슬롯적 예절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외국인도 함께 잠시 멈춰 서면 태국 문화를 존중하는 작은 표현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