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도시
태국의 모든 공간에는 예외없는 공통점이 있다. 건물 앞이든 실내든, 어디에나 꼭 있는 자리. 바로 기도하는 곳이다.
나는 서울보다 더 거대한 도시, 방콕에 산다. 슬쩍 지나치면 세계 어디에서나 마주칠 법한 대도시의 풍경이다. 그러나 방콕에는 서울에서 볼 수 없는 장면이 있다.
대도시의 아침은 분주하다. 무표정한 얼굴들이 가장 바쁘게 움직이는 시간. 그 바쁜 발걸음을 멈추고 사람들이 선다. 건물 앞 불단이나 사당 앞에서다. 누군가는 꽃을 바치고, 누군가는 붉은 음료를 올리고, 누군가는 새 날에 갓 만든 음식을 차려놓는다. 사람들의 발길이 많은 곳일수록 오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제단은 그렇게 쌓인 마음들로 가득 찬다. 종교를 가져본 적 없는 나는 궁금했다. 무엇이 이토록 많은 사람들을 매일 멈춰 세우는지. 이 많은 기도를 다 품어줄 신이 정말 있을까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같이 시간을 들여 그 앞에 서는 사람들에게 자꾸 눈길이 갔다. 손을 모으고 눈을 감은 얼굴들. 아침의 분주함은 어디로 갔는지, 그 순간만큼은 정갈하고 신실했다. 가끔은 오히려 기도하는 사람들에게서 신성이 배어나오는 것 같았다.
언젠가 단골 쌀국숫집 주인이 가게 문을 열기 전 사당 앞에서 손을 모으는 걸 본 적이 있다. 간절한 표정이 마음에 남아 무얼 비느냐 물었다.
"오늘 손님들이 무사히, 평안히, 그냥 그렇게..."
끝을 얼버무린 말에 큰 욕심이나 바람은 없었다. 장사가 잘 되게 해달라는 말도, 돈을 많이 벌게 해달라는 말도 아니었다. 그저 오늘 하루가 무탈하기를. 그의 대답이 오래 남았다. 이곳 사람들에게 종교는 세대를 이어 삶의 기반이자 문화의 뿌리로 자리잡았다. 그래서인지 그들이 기도하는 것은 거창한 소원보다는 그저 오늘의 평안이다. 출근 길에, 운전대를 잡기 전에, 중요한 계약 전에, 점심을 먹기 전에. 하루의 작은 순간마다 평온을 빈다. 어쩌면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 같기도 하다. 동시에 오늘의 선한 마음과 행동이 먼 훗날의 자신을 돕는다는 것을 믿는다. 윤회를 통한 삶의 순환을 믿는 그들에게 공덕은 언젠가 돌아올 삶을 위한 씨앗이다. 이번 생이 고단해도 지금 좋은 공덕을 쌓는다면 더 나은 다음 생을 기약할 수 있다.
태국 사람들에게 기도는 단순히 소원을 비는 일만이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안다. 그들은 부처(또는 민간신앙의 수호신)를 절대적인 존재라기보다 스스로 업을 닦는 길을 보여준 스승으로 여긴다. 그러니 그 앞에 서는 시간은 선한 삶을 다짐하고 오늘의 자신을 바르게 세우는 수행에 가깝다. 하루를 시작하며 마음을 정돈하고, 주변에 감사와 존경을 표하며, 다음 생을 위해 좋은 덕을 쌓는 일상의 의식. 종교에서 시작된 행위는 반복을 거쳐 문화가 되고 하루를 시작하는 생활의 리듬이 되었다.
태국살이 9년차. 나는 이제야 그들의 삶 속으로 한 걸음 들어간다. 새벽 달리기를 마치고 붉은 해가 떠오를 때, 나도 제단 앞에 선다. 햇살을 받아 유난히 빛나는 금빛 제단 앞에서 조용히 숨을 고른다.
'오늘도 평범한 하루를 맞이하게 해줘서 감사합니다. 모든 일이 평안하기를 바랍니다.'
큰 소원은 빌지 않는다. 그저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아직도 내 앞에 모셔진 이가 누구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하나는 알 수 있다. 제단 앞에서 눈을 감는 순간이 내 마음을 가장 고요한 자리로 데려가 단단하게 해주는 시간임을. 그래서 오늘도 나는 두 손을 모은다. 평범한 하루 하나가 얼마나 큰 축복인지 이 도시가 조금씩 가르쳐주고 있으므로.
★ 이방인의 메모
태국 불교에서 중요한 개념은 บุญ(분)이다. 공덕, 선업, 복을 뜻하며, 기부나 공양, 봉사, 명상, 기도 등을 통해 공덕을 쌓는 것(ทำบุญ)을 중요하게 여긴다. 태국인들에게 기도는 소원을 비는 행위라기보다 마음을 다스리고 감사와 존경을 표현하며 좋은 업을 쌓는 일상적인 실천에 가깝다. 그래서 호텔, 병원, 회사 등에서도 หิ้งพระ(불단) 앞에 잠시 멈춰 합장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한편 ศาลพระภูมิ(정령의 집)는 불단과 다른 공간이다. 태국의 전통 신앙과 힌두교의 영향을 받은 수호신 사당으로, 태국에서는 불교와 민간신앙이 자연스럽게 공존한다.
정령의 집 앞에 놓인 빨간 음료는 태국의 대표적인 공양 문화다. 과거 제물의 상징이 붉은 음료로 바뀌었다는 설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으며, 빨간색은 생명력과 번영, 행운을 의미하는 길한 색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빨간 환타를 비롯한 붉은 음료를 바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러한 신앙은 태국인의 말에도 스며 있다. "ทำบุญ(공덕을 쌓다)", "มีบุญ(복이 있다)", "กรรมของเรา(이 또한 내 업이다)" 같은 표현은 이번 생의 행동이 다음 생으로 이어진다는 윤회와 업의 세계관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