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어렸을 때 한 곳에 머물며 이동할 일이 없는 공무원을 직업으로 가진 아빠를 원망한 적이 있다. 세상 여기저기를 떠돌고 싶은 마음은 그때부터였는지도 모른다. 다른 나라는커녕 다른 도시에도 살아볼 기회조차 없는 어린 시절이 답답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부터 다른 도시의 학교에 가겠다고 거창에 있는 한 학교의 교장선생님께 편지를 썼지만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그러다 대학생이면 성인이고 독립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부모님도 담임선생님도 모르게 집에서 멀리 있는 대학교에 지원서를 내고 덜컥 붙어버렸다. 그렇게 나의 떠돌이 생활이 시작되었다.
어른이 된 나는 스스로 내가 살 곳을 선택할 수 있었기에 그동안 참 많이도 떠돌아 다니며 살았다. 대학교에 입학한 이래로 지금까지 이사를 열다섯 번도 넘게 했다면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낯선 장소에 대한 호기심은 끝나지 않아 외국에서 살아볼 기회도 호시탐탐 노렸다. 내가 살아본 도시의 이름도 하나둘 늘어갔다. 런던, 아부다비, 호치민, 탄자니아, 그리고 지금의 방콕. 지도 위에 점을 찍듯 삶의 좌표가 옮겨다녔다. 삶 전체로 보자면 여행이었다. 하지만 꼭 여행만은 아니었다.
낯선 곳에서는 언제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나를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곳에서는 어제의 나로부터도 조금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모든 것을 새롭게 해야할만큼 내 삶이 엉망이었던 적은 없었다. 그래도 마치 배우가 작품마다 다른 인생을 살아보듯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설렘부터 일었다. 매번 떠나는 이유가 같지는 않았지만, 떠나고 싶은 마음만큼은 한결같았다.
어쩌면 낯선 사람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익숙한 사람이 아니라 낯선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을 좋아했는지도. 그렇게 스스로의 정체성을 '이방인'으로 두고 삶을 꾸려왔다.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렵지는 않다. 늘 이방인이었으므로. 이방인은 익숙함에 무뎌지지 않은 사람이다. 그래서 모두가 지나치는 풍경 앞에서도 한 번 더 걸음을 늦출 수 있다. 이 글들은 그렇게 바라본 풍경들에 대한 기록이다. 태국에서 살아가며 만난 사람들, 문화, 계절, 그리고 그 안에서 조금씩 변해가는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
나는 오늘도 이방인으로 살아간다. 완전히 속하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떠나지도 못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