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바다는 평화롭고 포대는 침묵했다

― 무나카타·오시마 올레

by배정철

― 무나카타·오시마 올레


서로 다른 아침

오늘은 오시마(Ōshima, 大島)로 들어가는 날이다. 후쿠오카현 무나카타시(Munakata, 宗像市)에 속한 이 섬은 규슈 본토에서 약 10킬로미터 떨어진 겐카이나다(玄界灘)에 자리한다. 고노미나토항(神湊港)에서 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간다. 배편이 뜸한 탓에 출항 시간을 놓치면 다음 배까지 한참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아침부터 서두른 이유다. 숙소인 와지로(Wajiro, 和白)의 호텔에서 아침식사가 시작되는 오전 6시에 맞춰 식당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벌써 긴 줄이 늘어섰다. 줄을 선 사람들은 거의 모두 남자였다. 일본인도 있었고 외국에서 일하러 온 사람들로 보이는 이들도 섞였다. 작업복 차림의 남자들이 식판을 들고 음식을 담았다. 서로 말을 나누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체로 조용했다. 식사를 마친 사람들은 오래 머물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여행자의 아침과 노동자의 아침은 다르다. 우리는 하루를 어디에서 보낼지, 무엇을 볼지 궁리하며 식탁에 앉지만 그들은 정해진 시간에 일터로 향한다. 같은 호텔에서 같은 아침을 먹어도 하루의 무게는 서로 다르다. 여행자는 낯선 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찾고, 노동자는 낯선 곳에서도 익숙한 일상을 이어간다. 그들에게 이 호텔은 어떤 공간일까. 집을 떠나 일터 가까이에 머무는 임시 숙소일 수도 있고, 며칠씩 현장을 옮겨 다니는 노동자들의 거처일 수도 있다. 출신과 사정은 알 수 없지만, 식사를 마치고 서둘러 자리를 떠나는 모습에는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의 익숙한 질서가 배어 있었다. 여행 안내서에는 등장하지 않는 일본의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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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마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열차와 버스를 갈아타며 고노미나토항으로 향했다. 전날 신구·다치바나 올레를 걸으며 여러 차례 길을 헤맨 탓인지 교통편을 확인하는 일에도 한결 신중해졌다. 낯선 역에서 승강장을 찾고 열차의 행선지를 확인하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았다. 노가타역(Nōgata, 直方駅)에서는 한 고등학생에게 승강장을 물었다. 학생은 말로만 방향을 알려주지 않았다. 자신이 가던 길을 멈추고 우리가 타야 할 열차의 승강장까지 직접 안내했다. 전날 후쿠오카공항에서 만난 직원과 오늘 만난 학생은 서로 모르는 사이지만 그들의 친절은 닮았다. 잠깐 가르치고 배운다고 익힐 수 있는 행동이 아니다. 오랫동안 보고 듣고 몸으로 익힌 삶의 태도다. 작은 친절 하나에도 한 사람이 살아온 시간과 그를 길러낸 슬롯의 문화가 배어 있다.

요즘은 지나가는 낯선 이에게 길을 묻는 일도 드물다. 손 안의 지도와 정보로 웬만한 문제를 해결하는 시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도 있다. 사람의 온기가 필요한 순간, 작은 배려와 친절이 더해져야 비로소 풀리는 일이 있다. 낯선 곳을 여행할 때, 특히 일본에서는 그런 순간을 자주 만난다.


바다를 건너 신들의 섬으로

고노미나토항에서 배를 타고 오시마로 향했다. 항구를 벗어나자 바다가 넓게 펼쳐졌다. 육지에서는 하나로 이어지던 산줄기가 물 위에서 여러 개의 섬으로 갈라졌다. 배가 나아갈수록 본토의 건물들은 작아지고, 섬의 윤곽은 또렷해졌다. 오시마는 무나카타 신앙의 중요한 장소다. 이곳에는 무나카타타이샤(宗像大社)의 세 신사 가운데 하나인 나카쓰궁(中津宮)이 자리한다. 무나카타의 세 여신은 오래전부터 바다를 건너는 사람들의 안전을 지키는 신으로 숭배받았다. 바다를 생업의 터전으로 삼은 사람들에게 항해는 곧 생존의 문제였다. 배 한 척에 사람과 물자를 싣고 먼바다로 나서는 일에는 기술과 경험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위험이 따랐다.


그래서 사람들은 바다를 건너기 전에 신에게 빌었다. 무사히 돌아오게 해 달라는 기도였다. 오늘날에는 항구에서 배의 출항 시각을 확인하고 날씨를 살피지만, 먼 옛날에는 바람과 파도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훨씬 적었다. 신앙은 알 수 없는 바다를 향해 나아가야 했던 사람들의 두려움과 소망을 함께 품었다. 섬에 도착해 나카쓰궁을 찾았다. 신사로 들어서는 길에는 오래된 나무들이 그늘을 드리웠다. 돌계단과 목조 건물이 숲의 색깔과 어우러졌다. 화려한 장식보다 차분한 공간의 질서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나무와 돌, 그 사이를 지나는 사람의 걸음이 신사의 분위기를 만들었다.

일본의 신사를 걸을 때면 자연과 신앙의 관계를 살피게 된다. 신토(神道)에서는 산과 숲, 바위와 물에도 신성함이 깃든다고 여긴다. 자연은 인간이 정복하거나 이용하는 대상에 그치지 않는다. 사람의 삶을 둘러싸고 때로는 풍요를, 때로는 두려움을 안기는 존재다. 오시마의 신사도 바다와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다. 신사의 고요함 뒤에는 거친 바다를 건너야 했던 사람들의 오랜 시간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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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를 지나 본격적인 올레길에 들어섰다. 초반부터 제법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졌다. 섬이라고 해서 평탄한 해안길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좁은 길은 숲 속으로 파고들었고, 나무 사이로 간간이 바다가 나타났다. 숨이 가빠질 무렵 능선에 올라서자 시야가 열렸다. 전날 신구의 길에서는 갈림길마다 표식을 찾아야 했지만, 오시마에서는 걷는 일 자체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숲을 지나고 능선을 따라 걷는 동안 섬의 고요함이 차츰 몸에 스며들었다. 자동차 소음 대신 바람과 나뭇잎이 부딪히는 소리가 길을 채웠다.


평화로운 바다와 침묵하는 포대

풍차전망대에 이르자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멀리 수평선이 열리고, 크고 작은 섬들이 옥빛 바다 위에 흩어졌다. 전망대 주변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준비해 온 초밥으로 점심을 먹었다. 바다를 바라보며 먹는 소박한 한 끼였다. 값비싼 식당이나 특별한 음식이 없어도 여행의 한 장면은 오래 남는다. 그날의 바람과 빛, 걷느라 허기진 몸이 음식의 맛을 완성한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바다는 평화로웠다. 물결은 햇빛을 받아 반짝였고, 섬들은 저마다의 거리를 두고 떠 있었다. 어선이 지나간 자리에는 가느다란 물길이 남았다가 이내 사라졌다. 육지에서 보던 바다와 크게 다르지 않으면서도 섬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다른 표정을 지녔다. 바다가 사방을 둘러싸자 풍경의 중심이 육지에서 물로 옮겨갔다.


그러나 조금 더 걸어 포대전망대에 이르자 풍경의 의미가 달라졌다. 그곳에는 과거 군사시설의 흔적이 남았다. 바다를 향해 무기를 배치했던 자리다. 지금은 총성이 들리지 않고, 적의 함선을 살피는 군인도 없다. 관광객이 전망대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고 사진을 찍는다. 한때 경계와 공격을 위해 사용하던 공간이 평화로운 풍경을 감상하는 장소로 바뀌었다. 포대는 섬이 지닌 또 하나의 역사를 보여준다. 바다를 건너는 사람들의 안전을 빌던 신앙의 섬에, 훗날 바다를 감시하고 전쟁에 대비하는 시설이 들어섰다. 같은 바다를 앞에 두고 한쪽에서는 무사한 항해를 기원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적의 접근을 경계했다. 바다는 달라지지 않았지만 인간이 바다를 바라보는 방식은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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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대 주변에는 예술작품도 자리했다. 군사시설의 흔적과 예술이 한 공간에 놓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무기를 설치했던 자리에 작품을 놓는다고 전쟁의 역사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과거의 흔적을 지우지 않은 채 새로운 쓰임을 더할 때, 그 공간은 지나온 시간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전쟁의 유적은 어떻게 남겨야 할까. 부수고 없애는 일만이 과거와 결별하는 방법은 아니다. 그렇다고 낡은 군사시설을 그저 특이한 관광 명소로 소비해서도 곤란하다. 그곳에서 무엇을 준비했고, 누구를 두려워했으며, 그 두려움이 어떤 폭력으로 이어졌는지 기억해야 한다. 역사를 기억하는 일은 과거를 오늘의 분노로만 되살리는 것이 아니라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현재의 삶을 돌아보는 일이다.


오시마의 포대는 더 이상 바다를 향해 위협을 가하지 않는다. 콘크리트 구조물은 침묵하고, 그 너머로 바다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펼쳐진다. 그러나 자연의 평온함이 인간의 역사를 지워주지는 않는다. 파도는 흔적을 씻어내지만 기억은 사람이 붙들어야 한다. 신사에서 포대까지 걸어온 길을 돌아보았다. 바다를 두려워하며 신에게 의지하던 시대와 바다를 지배하려 무기를 세우던 시대가 한 섬에 겹쳤다. 인간은 자연 앞에서 겸손해지기도 하고, 다른 인간 앞에서는 끝없이 오만해지기도 한다. 오시마의 길은 그 상반된 모습을 나란히 보여주었다.


섬을 떠나며

포대를 지나 다시 해안 쪽으로 내려왔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던 바다가 조금씩 가까워졌다. 산길에서 보이지 않던 집과 도로가 나타나고, 섬사람들의 생활공간이 이어졌다. 전망대에서는 아름다운 풍경으로만 보이던 섬도 가까이 내려오면 누군가의 일터이자 삶의 터전이다. 우리가 걷는 동안 섬은 대체로 조용했다.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관광객에게 그 고요함은 매력이지만, 주민에게는 일상의 한 모습이다. 여행자는 한적한 마을을 아름답다고 말하며 지나가지만,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배편과 일자리, 생활의 편리함을 함께 생각해야 한다. 아름다운 풍경만으로 한 지역의 삶을 설명할 수는 없다.


오후 2시 40분 배를 타고 섬을 떠났다. 오시마가 조금씩 멀어졌다. 들어올 때와 같은 바다였지만 돌아가는 길에 바라본 섬은 달랐다. 처음에는 옥빛 바다와 숲길이 아름다운 섬으로 다가왔다. 이제 그 풍경 뒤에 바다를 건너던 사람들의 기도와 전쟁을 준비하던 사람들의 흔적이 겹쳤다. 여행자는 대개 아름다운 풍경을 찾아 길을 나선다. 그러나 오래 남는 여행은 풍경의 아름다움만 확인하고 돌아오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곳에 살아온 사람들의 시간과 자신이 미처 알지 못했던 역사를 만날 때 장소는 비로소 깊이를 얻는다.


오시마의 바다는 평화로웠다. 신사는 오래된 기도를 품었고, 포대는 무기를 내려놓은 채 침묵했다. 바다는 그 모든 시간을 지켜보았지만 어떤 설명도 덧붙이지 않았다. 그 앞에서 역사를 읽고 의미를 묻는 일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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