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떠나는 사람, 남아 있는 나무

― 지쿠호·가와라 올레

by배정철

― 지쿠호·가와라 올레

기차역에는 떠나는 사람과 남는 사람이 있다

아침 일찍 다가와이타역(田川伊田駅)으로 향했다. 오늘 걸을 지쿠호·가와라(筑豊・香春) 올레의 출발점인 사이도쇼역(採銅所駅)까지 기차를 탄다. 며칠째 규슈의 지방 도시를 오가며 열차를 타고 있지만, 작은 역에 들어설 때마다 가슴 한켠이 풋풋해진다. 오래된 승강장에 서로 다른 모양의 열차가 들어오고, 낯선 지명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교복을 입은 학생은 학교로, 출근길의 온라인 게임인은 일터로 향한다. 빠른 신칸센과 화려한 특급열차가 달리는 나라에서 이런 작은 지방역들이 여전히 사람들의 일상을 이어준다는 사실이 반갑다. 덜컹거리며 달리는 기차는 언제나 정겨움이다. 차창 밖으로 낮은 집들과 들판이 지나가고, 이름도 낯선 역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낸다.


아내는 기차역에 서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진다고 한다. 기차역은 아내에게 아직 가보지 못한 세상으로 이어지는 출발점인 모양이다. 같은 승강장에 서서 나는 떠나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떠나보내는 이들을 떠올린다. 다 자란 자식이 일자리를 찾아 도회지로 떠나고, 군에 입대하는 아들이 무거운 가방을 들고 열차에 오른다. 아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승강장을 떠나지 못하는 부모의 마음이 기차에 매달려 있다. 명절을 쇠러 친정에 왔다가 돌아가는 딸에게 손을 흔드는 어머니는 더 아련하다. 딸은 차창 너머로 웃으며 손을 흔들지만 기차가 떠난 뒤에도 어머니는 한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한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먼 도시로 떠나고, 남겨진 사람은 돌아올 날짜를 헤아린다. 아내가 기차역에서 떠남의 설렘을 본다면 나는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이들의 쓸쓸함을 본다. 같은 승강장에 서 있어도 마음에 담아 온 삶의 장면에 따라 풍경은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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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곽재구의 「사평역에서」를 참 좋아한다. 눈 내리는 겨울밤, 작은 간이역의 톱밥 난로 곁에서 사람들이 막차를 기다린다. 사평역에는 추위에 언 손을 난로 가까이 내미는 사람들의 고단한 삶이 모여든다. 역사에 이름을 남길 영웅도, 특별한 사건의 주인공도 없다. 저마다 하루를 살아낸 평범한 사람들이다. 아직 오지 않은 막차는 돌아오는 사람을 싣고, 떠날 사람을 태우기 위해 먼 데서 오는 중이다. 사평역의 톱밥 난로 곁에서 넉넉하지 않은 온기를 나누며 같은 공간에 머무는 사람들. 서로 이름도 모르고 살아온 길도 다르지만 막차를 기다리는 동안만큼은 같은 추위를 견딘다. 그들은 기차가 도착하면 다시 각자의 삶으로 흩어질 것이다. 짧은 기다림 속에 서로 다른 인생이 잠시 포개지는 곳, 기차역이 지닌 정취다.


기차가 떠난 뒤에도 승강장은 그대로 남는다. 조금 전까지 함께 서 있던 사람이 사라진 자리에 철길만 덩그러니 남아 떠나온 길과 떠나갈 방향을 알려 줄 뿐이다. 떠나는 사람의 마음은 앞으로 펼쳐질 시간으로 향하고 남겨진 사람의 시선은 멀어지는 기차의 뒤를 따른다. 철길은 두 개의 쇠막대가 나란히 놓인 길에 불과하지만, 그 위로 지나간 사람들의 사연들은 결코 곧고 단단하지 않다.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세상으로 향하는 길이고, 또 다른 이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자리, 기차역에는 언제나 떠나는 사람과 남는 사람이 있다.


석탄을 실어 나르던 철길

규슈에는 철도 노선이 많고 열차의 종류도 다양하다. 이 작은 지방 도시까지 철길이 이어진 까닭은 무엇일까. 일본 최초의 철도는 1872년 신바시와 요코하마 사이에 놓였고, 규슈에서는 1889년 하카타에서 지토세가와까지 열차가 달리기 시작했다. 이후 철도는 내륙으로 뻗어 나가며 규슈의 산업지도를 바꾸었다. 특히 지쿠호 지역의 철도는 석탄산업과 떼어놓고 이야기하기 어렵다. 이 일대는 일본 근대 산업화를 떠받친 대표적인 탄전이었다. 땅속에서 캐낸 석탄을 항구와 공장으로 실어 나르기 위해 철길이 필요했고, 철도가 놓이자 탄광은 더 많은 석탄을 생산할 수 있었다. 석탄이 철도를 불러왔고, 철도는 다시 탄광을 키웠다. 오늘날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평화로운 마을과 들판에는 한때 검은 석탄을 캐고 운반하던 노동의 시간이 겹친다.


이처럼 철도는 본래 여행의 낭만을 위해 놓인 것이 아니다. 사람과 물자를 빠르게 운반하려는 경제적 필요와 국가의 이해관계가 철길의 방향을 결정했다. 한국의 철도 역시 사람들의 이동을 편리하게 만들었지만, 일제강점기에는 식민지 수탈과 군사적 침략을 뒷받침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일본은 한반도에 철도망을 확장하면서 군대와 군수물자를 이동시키고 식민지에서 생산한 자원을 항구로 실어 날랐다. 철도가 놓이면서 교통은 편리해졌지만, 그 편리함이 누구의 필요를 위해 만들어졌고 누구에게 더 큰 이익을 가져다주었는지 따져보면 철마가 달리며 세상을 바꾼 근대화라는 것도 달리 읽힌다. 지쿠호의 철도 또한 산업 발전의 역사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갱도 아래에서 석탄을 캐던 광부들의 고된 노동과 탄광 주변에서 살아가던 가족들의 삶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철길을 따라 석탄이 실려 나가고 공장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동안, 수많은 노동자가 자신의 몸으로 산업을 움직였다. 탄광이 문을 닫은 뒤에도 철길은 남았지만 그곳에서 일하던 사람들의 삶은 기록 속으로 조금씩 멀어졌다.


언젠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보고 싶다. 며칠 동안 열차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으며 광활한 시베리아의 평원과 끝없이 이어지는 자작나무숲을 바라보는 여행이다. 차창 밖으로 낯선 마을과 강이 지나가고, 해가 저물면 먼 지평선 너머로 붉은 노을이 번질 것이다. 이름도 생소한 작은 역에 기차가 멈추면 잠시 플랫폼에 내려 차가운 공기를 마시고, 다시 객실로 돌아와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는 여유도 누리고 싶다. 밤이면 덜컹거리는 바퀴 소리를 들으며 잠들고, 아침에는 어제와 전혀 다른 풍경 속에서 눈을 뜰 것이다. 비행기라면 몇 시간 만에 건너뛸 거리를 며칠씩 달리면서도 서두를 이유가 없다.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는 것보다 그곳으로 가는 시간이 더 소중한 여행. 기차가 달리는 동안 바카라을 읽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보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흘러가는 풍경에 마음을 맡기고 싶다. 어쩌면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싶은 이유는 먼 곳에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먼 거리를 천천히 건너는 시간을 온전히 누리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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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코스의 출발점인 사이도쇼역은 1915년에 문을 열었다. 올해로 111년이다. 사이도쇼(採銅所)라는 이름에는 구리를 캐던 지역의 역사가 남아 있다. 백 년 넘는 세월 동안 이 작은 역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오갔을까.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청년과 탄광으로 향하는 노동자, 학교에 가는 학생과 장을 보고 돌아오는 주민들이 같은 승강장을 지나갔을 것이다. 철길은 그대로인데 열차가 실어 나르는 사람들의 삶은 시대마다 달라졌다. 백 년의 시간을 품은 작은 역에서 배낭을 메고 산길로 들어섰다. 석탄과 광물을 실어 나르던 철도가 오늘은 숲을 찾아온 여행자를 내려놓았다.


대나무숲과 삼나무숲의 시간

사이도쇼역을 벗어나 산길로 접어들자 마을의 소음이 차츰 멀어졌다. 아니 사실 마을의 소음이라고 할 것도 없이, 마을과 산은 모두 고요 속에 잠겨 있었다. 풍경이 달라졌을 뿐이다. 대나무숲이 길을 감쌌다. 굵고 곧은 대나무들이 빽빽하게 솟아 하늘을 가렸고, 잎들은 서로 스치며 바람 소리를 냈다. 줄기 사이로 햇빛이 가늘게 들어와 땅 위에 길고 짧은 그림자를 그렸다. 바람이 불 때마다 대나무들은 조금씩 몸을 기울였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대나무는 나무처럼 보이지만 식물학적으로는 벼과에 속하는 풀이다. 땅 위에서는 저마다 한 줄기씩 서 있지만 땅속에서는 줄기들이 서로 연결되어 새로운 죽순을 밀어 올린다. 눈에 보이는 줄기는 따로 서 있어도 보이지 않는 땅 아래에서는 하나의 군락으로 이어진다. 빽빽한 대나무숲을 지나며 서로 기대고 연결되어 살아가는 생명의 방식을 본다. 겉으로 드러나는 개별적인 모습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어지는 관계가 숲을 지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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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숲을 지나자 삼나무들이 나타났다.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줄기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서 있다. 일본의 산에서 흔히 만나는 삼나무는 오래전부터 목재를 얻기 위해 널리 심어온 나무다. 곧게 자라는 줄기와 비교적 빠른 성장 때문에 집을 짓고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만드는 데 유용했다. 산을 덮은 삼나무숲은 자연의 풍경이면서 인간의 노동이 오랫동안 만들어온 결과이기도 하다. 대나무숲에서는 잎들이 스치는 소리가 가깝게 들렸고, 삼나무숲에서는 키 큰 줄기들 사이로 시선이 멀리 뻗었다. 대나무는 땅속줄기로 서로 이어지며 빠르게 새로운 줄기를 밀어 올리고, 삼나무는 해마다 줄기를 굵게 하며 오랜 세월 자란다. 같은 산에 뿌리내리고도 생명이 시간을 쌓아가는 방식은 서로 다르다.


아침에 보았던 철길이 떠올랐다. 철도는 멀리 떨어진 도시와 마을을 연결하기 위해 놓였다. 대나무는 땅속에서 서로를 이어주고, 삼나무는 한곳에 뿌리내린 채 하늘을 향해 자란다. 인간은 철길을 놓아 거리를 줄였지만 숲의 생명들은 이동하지 않고도 서로 연결되는 방법을 오래전부터 익혀왔다. 철길 위의 열차가 사람을 먼 곳으로 데려간다면 숲의 뿌리는 제자리에서 다른 생명과 이어진다. 이동과 정착, 확장과 연결. 아침부터 이어진 기차 여행과 숲길이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을 보여준다. 대나무숲의 바람 소리를 들으며 걷던 발걸음이 조금 느려졌다.


여덟 세기를 살아온 나무

대나무숲과 삼나무숲을 지나 모토코간지(元光寺)의 녹나무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수령이 약 850년이라는 거목이었다. 밑동은 작은 언덕처럼 넓게 퍼졌고, 거친 껍질을 두른 줄기는 하늘로 솟다가 여러 갈래의 굵은 가지를 사방으로 뻗었다. 가지마다 무성한 잎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나무 아래 서니 그동안 숲에서 보았던 크고 오래된 나무들마저 평범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배낭을 멘 채 다가가 두 팔을 활짝 벌렸다. 줄기를 한번 안아보고 싶었다. 그러나 양팔을 아무리 뻗어도 나무의 둘레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사진을 찍어놓고 보니 거대한 나무에 매달린 작은 매미 한 마리, 딱 그 모습이었다. 여든 해도 겨우 사는 인간이 여덟 세기를 넘긴 나무를 품어보겠다고 팔을 벌린 셈이었다. 손바닥을 나무껍질에 가만히 대보았다. 오래된 나무에서는 좋은 기운이 나온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 녹나무도 사람들이 기운을 얻으러 찾아오는 곳이라고 했다. 850년 동안 살아남은 생명에게서 무엇이라도 조금 얻어갈 수 있다면 좋겠다는 소박한 욕심이었다. 그 거친 껍질 위에 손은 얹고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이 녹나무에는 마을을 지켜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1945년 큰 태풍으로 산사태가 일어나 이곳에 있던 고간지(光願寺)가 토사에 묻히고 주변 집들도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그때 거대한 녹나무가 밀려오는 흙과 돌을 막아 마을의 피해를 줄였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 마을 사람들이 나무를 지켜왔지만 재난이 닥친 날에는 나무가 사람들을 지켜준 셈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다시 밑동을 바라보았다. 땅을 움켜쥔 듯 사방으로 뻗은 뿌리와 쉽게 가늠할 수 없는 굵기의 줄기. 사람들이 이 나무를 특별하게 여기는 까닭이 단지 오래 살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마을이 겪은 재난과 살아남은 사람들의 기억이 나무에 겹쳐지면서 녹나무는 한 그루의 식물을 넘어 마을의 역사를 간직한 존재가 되었다. 사람들이 나무에 손을 대며 좋은 기운을 구하는 행위에도 그런 기억이 스며 있을 것이다. 오래 살아남은 생명 앞에서 자신의 남은 시간도 무사하기를 바라는 마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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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보았던 사이도쇼역은 개업한 지 111년이 되었다. 그 세월도 길다고 여겼는데 녹나무는 철길이 놓이기 700여 년 전부터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기차가 사람들을 먼 도시로 실어 나르고, 산업이 흥하고 쇠퇴하고, 마을의 모습이 바뀌는 동안에도 나무는 이 언덕을 떠나지 않았다. 아침부터 기차를 타고 산길을 걸어 이곳까지 왔다. 언젠가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대륙을 가로지르고 싶다는 꿈도 품고 있다. 그런데 여덟 세기를 살아온 이 나무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자리를 떠난 적이 없다. 멀리 가야 더 많은 세상을 만날 수 있다고 믿는 인간 앞에서 녹나무는 한 곳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깊은 시간을 살아낼 수 있는지 보여준다.


다시 한번 손바닥으로 나무껍질을 어루만졌다. 뭔가 좋은 기운이 손바닥을 타고 온몸으로 전해 오는 듯했다. 다만 나의 바람이고 느낌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가 얻고 싶었던 것은 신비한 기운이 아니라, 그토록 오랜 세월을 견뎌온 생명 앞에서 잠시 마음을 내려놓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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