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보배농원, 가을 밤호박 심는 시기
가을 밤호박은 한여름부터 시작해 선선한 가을 동안 키운 뒤 초겨울에 수확한다. 모종을 직접 키우려면 서리가 내리기 전에 수확할 수 있도록 거꾸로 날짜를 계산해 파종 시기를 정해야 한다. 육묘 기간이 10~15일 정도로 짧기 때문에 정식 날짜를 먼저 정하고 파종 시기를 역산한다. 예전에는 가을 밤호박을 7월 중순 ~ 7월 하순쯤 파종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폭염이 심해지면서 파종 시기도 조금 늦춰졌다. 요즘은 8월 15일 전후로 파종하고 있다.
단기간 육묘 후 잎이 3~4장 정도 나오면 밭에 옮겨 심는다. 가을 밤호박은 보통 8월 중순에서 8월 하순 사이에 정식을 마쳐야 서리가 내리기 전에 수확할 수 있다. 되도록 8월 안에는 심는 것을 마치는 게 좋다.
2026년 가을 밤호박 재배일지
- 8월 17일 파종
- 8월 30일 정식
올해는 하우스 한 동만 심기로 해서 파종할 때부터 여유가 넘쳤다. 육묘도 하우스에서 하지 않고 마당 한쪽의 그늘진 곳에서 시작했더니 초반에는 웃자람이 심하지 않았다. 파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폭염이 잠시 주춤했다. 가끔 내리는 단비까지 맞아가며 모종은 제법 튼튼하게 자랐다. 파종의 여유가 모종이 자라는 동안에도 계속될 것 같았다. 그런데 8월 말이 되자 기온이 다시 올랐다. 모종은 결국 웃자라기 시작했다.
봄에 멀칭한 그대로 두고 가을 밤호박을 심다 보니 흙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매년 가을 밤호박 심을 때마다 흙을 파면서 하려니 힘들었다.
그런데 올해는 조금 달랐다. 봄 밤호박 재배가 일찍 끝난 덕분에 하우스 정리도 빨리 마칠 수 있었다. 덕분에 가을 밤호박을 심기 전에 흙을 한 번 더 다지고 잡초도 뽑을 시간이 생겼다.
모종을 심기 전, 농부님이 우산모자를 쓰고 호미를 들고 나섰다. 나는 오전에 잡초를 뽑고 오후에는 흙을 다질 생각이었는데, 농부님이 나를 말렸다.
"다지는 건 내가 할 테니까 그냥 둬"
작업을 하던 날은 폭염이었다. 아마 일을 끝내고 나서는 그렇게 말한 걸 후회했을지도 모르겠다.
대망의 가을 밤호박을 심던 날. 아침 일찍부터 비가 내렸다. 잘된 일이다. 폭염보다는 사람도 일하기 수월하고, 호박들도 적응하기 쉬울 테니까. 일하는 사람의 마음은 그랬다. 그런데 비가 내려도 너무 내린다. 잠깐 빗줄기가 약해진 틈에 준비 작업을 마치고 오전 7시 30분부터 심기 시작했다.
농부님이 뿌리 소독을 마친 밤호박 모종을 트레이에서 하나씩 꺼내 멀칭 위에 올려 두면 내가 심었다. 아무리 전날 흙을 다져놓았어도 모종 이식기가 들어가지는 않았다. 결국 어르신들 방식으로 하나씩 심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흙을 미리 다져 놓으니 모종삽은 쉽게 들어갔다. 그나마 일하기가 수월했다.
날씨가 요지경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강한 비가 내리다가 약해진 빗줄기에 일을 시작했다. 비가 그치더니 레이저로 쏘는 듯한 햇살이 등을 때렸다. 땀이 줄줄 흘렀다. 흐린 날씨에 여유롭던 마음도 바빠졌다. 멀칭 위에 놓인 호박 모종들이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쪼그리 의자도 내팽개치고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으나 농부님이 내려놓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여보, 내가 이만큼 심고 나면 그때 내려줘"
웬일로 내 말을 듣네? 트레이를 내려 놓고 농부님이 쪼그리 의자를 착용하고 모종삽을 들고 와 함께 심기 시작했다. 적당히 심다가 농부님은 다시 모종을 가지러 밖으로 나갔다.
한창 심고 있는데 또다시 하우스를 때리는 빗소리가 요란해졌다. 잠깐 내린 비가 그치고 햇님이 또 열일이다. 이날 날씨는 정말 롤러코스터 같았다. 계속 롤러코스터 장단에 맞춰 하우스 창을 열었다 닫았다 할 수는 없어서 그냥 열어 두었다. 빗소리를 배경음악 삼기도 했다가 땀으로 샤워를 하기도 하며 오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가을 밤호박 모종 심기가 끝났다.
하늘이 무지개를 보여주려고 하루 종일 그렇게 장난을 쳤나 보다. 장마철 같은 날씨가 이어진 끝에 오후에는 하우스 위로 커다란 무지개가 떴다. 일의 힘듦도 잠시 잊고 무지개가 반갑다. 괜히 컨테이너 가득 담겨 있을 가을 밤호박을 상상하게 되었다. 이제 시작인데 벌써 수확한 것처럼 마음이 부자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