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 수확 시기
수박은 너무 일찍 따면 밍밍하고, 너무 늦게 따면 과육이 물러진다. 가장 달콤한 맛을 내려면 알맞은 수확 시기를 맞춰야 한다. 수확 시기는 수정한 날짜와 수박이 보내는 신호를 함께 살펴보면 어렵지 않게 판단할 수 있다.
수정날짜
품종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수정 이후 30~45일 사이에 수확이 가능하다. 대과종은 수정 후 40~45일, 애플수박은 수정 후 30~35일 정도이다.
덩굴손의 변화
제일 확실한 수확시기의 판별방법은 '덩굴손의 변화'이다. 수박꼭지 바로 위의 덩굴손이 갈색으로 마르기 시작하면 수확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신호이다.
2026년 수박 재배일지
- 4월 22일 애플, 흑피, 망고(2개씩) 아주심기
- 5월 14일 1차 웃거름
- 7월 20일 애플수박부터 수확 시작
- 8월 2일 현재 13개 남음(망고 3개, 애플 1개, 흑피 9개)
쭉쭉 그물을 타고 올라가 여러 갈래로 곁순들이 나오면서 아들줄기, 손자줄기 할 것 없이 노란 수박꽃들이 피었다. 이때만해도 물을 주고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볍고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그 많던 꽃들은 속을 보여주기도 전에 노랗게 변하며 떨어졌다. 낙과였다.
그 와중에 자연수정된 수박이 딱 하나 생겼다. 그런데 내가 알던 수박과는 생김새부터 달랐다. 럭비공처럼 길다랗게 생긴데다가 색깔도 다르고, 무늬도 없었다. 순식간에 몸집이 불어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하우스에 갈 때마다 더 커지는 걸 보니 애플수박은 아닌 것이 분명했다.
자연수정으로 작년에는 주렁주렁 애플수박이 매달렸다. 올해는 벌도, 나비도 보이지 않았다. 잦은 낙과 끝에 결국 내가 벌이 되었다. 붓을 가지러 가는 몇 걸음도 유난히 멀게 느껴졌다. 수꽃을 꺾어 꽃잎을 벌려 암꽃과 만나게 해 주었다. 수박을 기다리는 2번을 떠올리며 간절한 마음으로.
벌이 되어 몇 번 꽃을 들고 다녔더니 애플수박(모양을 보고 확신할 수 있는 건 요녀석밖에 없었다)과 흑피, 망고수박이 주렁주렁 달렸다. 무늬가 없는 건 혹시나 자연수정 수박처럼 사이즈가 커질 것 같았다. 애써 수정한 수박이 떨어질까 봐 망에 매달거나 컨테이너 박스 위에 올려두었다.
이후로는 가위를 들고 우후죽순 나오는 곁줄기들을 잘라내고 가끔 물만 주었다. 아들줄기의 겨드랑이에서 나온 손자줄기에서 또 손손자줄기가 나오고 또 나오고. 무한생산되는 줄기들에 수박이 익는 게 더딘 것 같아 잘라내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직 수확하기엔 이른데 애플수박의 덩굴손이 바짝 말라 있는 것이 아닌가. 당황한 눈으로 줄기를 훑어보니 곁줄기를 자르며 수박이 매달린 줄기까지 잘라버린 것이었다. 실망할지도 모를 마음으로 집으로 가져와 반으로 잘랐는데 잘 익었다. 맛도 좋다.
그렇다면 럭비공도???
하우스에 갈 때마다 럭비공 같은 수박을 보며 궁금증만 커졌다. 과연 이 녀석의 속내는 노란색일까, 빨간색일까. 매번 너무 궁금해서 가위를 들고 망설였다. 연두색인 덩굴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뒤늦게 수정된 애플수박이 빨갛게 잘 익은 걸 확인한 며칠 뒤, 덩굴손이 말라가기 시작했다.
못 기다리겠다.
2번에게 가위를 맡겼다.
집에 돌아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반으로 잘랐다. 도대체 너의 정체는 무엇이냐.
망고수박이었다.
사람의 마음이 간사하다. 노란 속내를 확인하자마자 이번엔 이름답게 얼마나 달콤할지 궁금했다. 반으로 잘라 바로 입으로 가져갔다. 생각만큼 달지는 않았다. 이름만 망고일 뿐 맛은 익숙한 수박맛이었다. 달콤함이 덜한 건 내가 조금 이르게 수확한 탓일 테다. 약간의 실망감과 함께 망고수박 조각을 내어 냉장고에 넣어 두고 저녁에 다시 먹었다.
세상에.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맛은 아니지만 잘 익은 수박만큼 달다. 이만하면 성공이다.
이번엔 동그랗고 무늬가 없는 수박이 궁금했다. 럭비공이 망고수박이라면, 동그란 수박은 아마 흑피애플수박일테지. 덩굴손이 말랐길래 가위를 들었다. 흑피애플도 어떤 달콤함을 줄지 궁금했다. 생각보다 달콤하진 않지만 그건 아마도 내 기대가 컸던 탓이리라. 남은 흑피애플이들은 냉장고에 시원하게 두었다가 먹어볼테다.
수박은 기다림의 작물이다.
너무 일찍 따면 밍밍하고, 너무 늦게 따면 물러진다. 딱 알맞은 순간을 기다려야 가장 달콤한 맛을 만날 수 있다. 올해 나는 그 기다림을 여러 번 참지 못했다. 궁금해서 가위를 들었고, 조급해서 먼저 잘라 보기도 했다. 다행히 크게 실패한 적은 없었지만, 망고수박을 먹으며 '조금만 더 기다릴걸.' 하는 아쉬움도 남았다.
열솥 같은 하우스는 한낮에 들어가기조차 쉽지 않다. 덕분에 요즘은 예전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여다보지 못하고, 남은 수박들이 익어 가는 시간을 함께 기다리고 있다. 이번에는 수박이 보내는 신호를 조금 더 믿어 보기로 했다. 녀석들은 어떤 달콤함으로 이 여름을 마무리해 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