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물을 수확했다고 바로 비닐을 걷어내지는 않는다. 줄기와 뿌리를 먼저 정리하고, 흙이 어느 정도 마른 뒤 바람이 잔잔한 날 비닐을 철거해야 작업이 훨씬 수월하다. 젖은 흙이 비닐에 달라붙으면 무게가 늘고, 바람이 강하면 비닐이 날려 작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비닐을 깨끗하게 걷어내는 일은 다음 농사를 위한 마지막 정리이자, 농지를 깨끗하게 관리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2026년 봄 밤호박 하우스 정리일지
- 7월 9일 하우스 세 동 비닐멀칭 철거
밤호박을 4열 재배를 하다가 작년 가을부터 덕 재배를 하기 시작했다. 덕을 시공하면서 농부님이 덜 힘들거라고 내게 말했었다. 아무래도 덕 재배는 밤호박을 키울 때 덜 힘든 것보다 뒷정리가 훨씬 수월하다. 하우스 세 동의 비닐멀칭 철거도 반나절만에 끝났다.
온다던 비는 소식이 없고 공기가 잔뜩 물을 머금은 듯한 날이었다.
감기약을 먹은 몸은 이불을 펴고 누우라고 했지만, 장마철에는 비가 오기 전에 일을 끝내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금방 끝낼 수 있으리라 짐작은 했지만, 혹시나 예상못한 일이 발생할 수도 있으니 아침을 먹고 아이들이 학교 가는 걸 보지 않고 바로 하우스로 향했다.
줄기와 부스러기까지 모두 쓸어낸 하우스 바닥을 보니 금방이라도 가을 밤호박 모종을 심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올해는 기존의 하우스 세 동에 밤호박 대신 녹비작물을 심을 예정이다. 그럴려면 봄 밤호박 재배에 사용한 자재들을 모두 걷어내야 했다.
하우스 입구에서 망설임없이 초록의 비닐 멀칭을 들어올렸다. 입구에서 들어가며 바닥에 깔린 멀칭을 잡아당겼다. 봄에 농부님과 열심히 삽질해서 고정시켜 둔 것이다. 하우스라고 노지보다 바람이 덜 드니 단단히 고정시키지 않아도 될 것 같지만, 생각보다 해남에는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창을 활짝 열면 듬성듬성 삽질로 고정한 흙이 제 역할을 못해 비닐이 뒤집어 진 적도 있었다. 꼼꼼하게 간격을 좁혀 삽질을 해 두어서 걷을 때는 힘이 많이 들기도 한다.
몇 년 전에 하우스 비닐이 찢어져 눈이 내린 비닐을 걷은 적이 있다. 물 먹은 흙이 비닐에 달라붙어 무게는 어마어마했다. 땅에서 떼내는 작업도, 말아서 걷어내는 작업도 힘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 때에 비하면 이날의 흙 상태는 뽀송뽀송해서 쉽게 들어올릴 수 있었다.
비닐을 들어올릴 때마다 흙먼지가 엄청 날린다. 습한 날씨에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땀과 먼지가 만나 옷은 흙먼지를 뒤집어 썼고, 마스크는 소용이 없었다.
하우스 뒷쪽까지 걸으며 비닐을 다 걷었다. 말면서 다시 하우스 입구로 갈 때 바람이 많이 부는 날 작업하면 비닐들이 춤을 춘다. 다행히 작업했던 날은 바람이 적당히 불어서 하우스 창을 다 열어도 비닐들은 바닥에 얌전히 있었다.
밤호박 농사를 지으며 처음에 내가 이 작업을 시작했을 때는 농부님의 잔소리를 많이 들었다. 나는 흐트러짐 없이 단단하게 말아야 버리러 옮길 때도 편할 거라고 생각했다. 요령이 없어 몸을 접어 마느라 허리도 아팠다. 내가 일하는 걸 보고는 혀를 끌끌 차던 농부님은 내게 작대기를 건넸다.
이건 아니다.
단단하게 말리지 않고 자꾸 풀어지고 흐물흐물해지는게 마음에 안들었다. 나의 목표는 '아름다운' 결과물이었고, 농부님은 힘들지 않게 일을 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요령이 생겨서 초반에 단단하게 말아 발로 데굴데굴 굴리면서 가끔 허리 숙여 단단하게 말아 준다.
그래, 이거다.
깔끔하게 말아서 마지막 끝부분을 말린 비닐 사이로 빼내서 살짝 묶으면 손잡이까지 완성! 들기도 편하다. 그렇게 옷이 엉망이 되어가며 하우스 세 동의 비닐멀칭을 다 걷어내는 데 2시간만에 끝났다. 4열로 재배하면 네 번을 하우스를 왔다갔다해야하지만, 덕 재배라 두 번만 왔다갔다하면 되니 금방이다. 습도 100%인 듯한 날씨이긴 해도 폭염보다는 일하기가 수월했다.
농사일을 하다 보면 비록 내 몸은 고되고 흙먼지를 뒤집어쓰지만, 아름다운 결과물을 보면 여전히 기분이 좋다. 하지만 이제는 그 결과를 만드는 사람도 멀쩡해야 한다는 걸 안다. 흙을 일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체력은 조금씩 줄어든다. 그래서 농부님이 덕 재배를 선택한 이유도 이제는 알 것 같다. 일을 줄이려는 게 아니라, 오래 농사짓기 위해서였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