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은 어떻게든 채워지겠지

by농부아내


작물을 재배하고 난 뒤 뒷정리를 수월하게 하려면 뿌리를 뽑아 바짝 말리면 옮기기 쉽다. 밤호박 수확이 끝난 뒤 뿌리를 먼저 뽑아 줄기를 충분히 말려야 철거가 훨씬 수월하다. 바짝 마른 줄기는 그물에서 한 번에 내려 옮길 수 있어 시간과 힘을 모두 아낄 수 있다.


2026년 봄 밤호박 하우스 정리일지
- 6월 22~23일 하우스 세 동 뿌리뽑기
- 6월 25일 하우스 세 동 핀 수거
- 6월 30일 하우스 세 동 집게, 받침대 수거
- 7월 1~2일 보배동 줄기 철거
- 7월 3일 보영동 줄기 철거
- 7월 8일 보미동 줄기 철거






늦은 장마 덕분에 뿌리가 뽑힌 밤호박 줄기가 누렇게 바짝 잘 말랐다. 비가 왔던 저녁에 보배동에 들렀다. 비가 그친 저녁, 보배동에 들렀다. 줄기 하나를 살짝 잡아당겨 봤다. 딱 적당하다.


줄기는 너무 말라도 문제였다. 손만 대도 바스러지는 상태면 부스러기가 많이 생긴다. 반대로 덜 마르면 고무줄처럼 질겨진다. 적당히 말랐을 때가 가장 일하기 좋다.



작년까지만해도 하우스 세 동의 그물에서 줄기를 다 내려 고분처럼 줄기들을 몇 개의 덩어리로 쌓아 두면 농부님이 덜어 냈다. 농부님이 일이 많아 딜레이되면 내가 하다가 다시 농부님에게로 바통 터치~ 농부님은 굵직한 줄기들만 덜어내고 부스러기로 떨어진 것들은 내가 빗자루로 쓸며 깨끗하게 철거를 마쳤다.


첫 작업을 시작했던 보배동에서 줄기를 그물에서 내린 뒷날 비 소식이 있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짐작컨대 줄기를 바닥에 쌓아 두면 비가 오고 습해지면서 곰팡이가 생길 것 같았다. 그래서 힘이 들어도 그날 바로 밖으로 옮겼다. 하루 바짝 일하는 편이 곰팡이와 씨름하는 것보다 낫다고 판단했다.


보배동 작업을 했던 날은 한여름처럼 더웠던 날이었다. 줄기를 비워 낸 수레에 아직 줄기가 그대로 있는 것처럼 무거웠다. 다리에는 무거운 돌을 매단 듯 한 걸음 내딛는 것조차 힘들었다. 한 시간 일하고 물을 마시고, 또 한 시간은 해야했지만 40분도 일을 안했는데 벌써 목이 말랐다. 집으로 돌아와 타우린이 든 음료 하나를 꺼냈다.


"크으~~~~~"


탄산은 소리를 내줘야 제맛이다. 평상에 앉아 아직은 선선한 바람을 맞고 있으니 다시 하우스로 들어가기가 싫다. 그래도 내년 농사를 위해선 빨리 정리를 해야지. 지친 나를 다독이며 장갑을 꼈다.


보영동과 보미동 작업을 할 땐 다행히 날씨가 흐렸다. 장마의 시작이라고들 했지만 습도가 생각보다 높진 않아서 수월하게 작업을 했다. 장마라고 해서 며칠씩 비가 이어질 줄 알았다. 그런데 올해는 하루 폭우가 쏟아진 뒤 계속 흐리기만 했다. 비가 오지 않는 틈을 놓치지 않고 작업을 이어 갔다. 습도가 높아 물 속을 걷는 듯 힘들 줄 알았으나 보배동 작업할 때보다도 훨씬 걷기가 쉬웠다. 마지막 보미동 작업을 할 때는 보검동도 수확이 끝나 뿌리 뽑는 작업까지 할 정도로 여유로웠다.


역시 적게 심으니 일이 적다. 하루에 한 동씩 철거작업이 끝나다니 믿기지가 않는다. 4열 재배를 할 때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적게 심으니 통장 속 숫자가 커지진 않지만, 순 치는 일도, 뒷정리를 하는 일도 수월하게 진행되니 그건 좋다. 올해 통장은 조금 아쉬울지 몰라도 허리는 훨씬 편했다. 10년 전과 달라진 내 상태를 돌아보니 이제는 오래 할 수 있는 농사를 꿈꾸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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