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밤호박을 손질하며

by농부아내


숟가락으로 밤호박 꼭지를 파내고 있으면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만약 멘토 어르신에게 이 일을 배우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본다. 수확 후 판매와 장마가 겹치고 손질없이 보관했다면 꼭지에서 곰팡이를 만났을 것이다. 그랬다면 아마 뭔가 또다른 대바카라을 세웠을 것 같기도 하다.


하나하나 손질하는 것이 버겁기는 해도 꼭지를 다듬어 1차로 말리면 후숙에도 도움이 되고, 보관도 수월해 멘토 어르신이 알려준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올해도 아무 소용없는 상상을 하며 1차 수확한 밤호박의 꼭지 손질을 마쳤다.


올해 정식 위치를 잘못 잡는 바람에 밤호박 터널도 완성이 되지 못했다. 예년 같으면 초록 잎 아래 밤호박들이 여기저기 매달려 있었을 텐데, 올해는 어딘가 휑했다. 그때부터 슬픈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1차 수확이 끝나고 난 뒤 하우스를 둘러보니 이오공감의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의 가사가 떠올랐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예상대로 1차 수확량은 적었고, 기존에 재배하던 하우스 세 동에서 2차 수확이 시작되었지만 판매하기엔 상태가 좋지 않았다. 가공이나 공판장으로 넘겨야 할 것 같다. 올해 뉴페이스로 등장한 보검동에서 그나마 두번째로 따게 될 밤호박들이 상태가 괜찮을 것 같다.



젤로 주문을 마무리하고, 호박 손질을 시작한 것은 6월 10일이었다. 수확이 시작되고 매년 판매하던 시점이 되니 농부님의 핸드폰이 자주 울렸다. 찾는 분들이 많아 공지를 하기도 전에 1차 출하를 해야했다. 꼭지 손질을 서둘러야 한다는 말이었다.


젤로 만드느라 정신이 없긴 했지만, 그 와중에도 주문은 받고 있었다. 출하 시점이 정해졌으면 미리 좀 알려주지....하고 생각하다가 곧바로 깨달았다.미리 알려줬어도 소용없었겠다. 밤낮으로 젤로 공장에서 일했으니까. 그래도 뒤틀린 마음이 들어 수확한 밤호박을 수레로 나르는 농부님을 보는 내 눈은 가자미가 되었다. 물론 오래 가진 못했다.


꼭지 주변을 숟가락으로 깔끔하게 파내고 브러시에 윙~~~ 광이 나는 밤호박을 보니 그제서야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그래, 이거지~ 우리 밤호박은 광이 나야지~'



아침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 전에, 잘 챙겨서 다녀오라는 말만 건네고 후숙 하우스로 향했다. 배꼽시계가 울릴 때나 아이들이 하교할 즈음 저녁 준비를 위해 집안일을 해야하는 시간을 제외하곤 계속 밤호박과 씨름을 했다.


1차 출하를 위해 농부님이 포장을 시작했다. 같은 공간에서 움직이려니 서로 걸리적거릴 것 같아 내가 스을쩍 빠지려 했다. 눈치가 빠른건가. 후숙 하우스 구석을 정리하더니 그곳에 포장대를 마련했다. 그렇게나 마눌 일을 시키고 싶은걸까. 아마도 다음 출하를 위해 서둘러야 할 꼭지손질때문일테지. 나보다 땅끝밤즈가 먼저였던가. 흥. 칫.


1차 출하 바로 뒷날 소량으로 두번째 출하가 있었다. 수확도 하고, 포장도 해야하는 농부님의 어깨가 더 쳐진 것 같아 이제는 괜히 짠해 보였다. 거기에 오르락내리락 요동치는 마눌 눈치까지 보려니 떠오르는 말이 있었지만 내뱉지는 않았다.


'고생이 많다..'


두 번의 출하 이후에는 농부님이 밤즈님들께 문자를 돌리기로 했다. 이제 몇 번의 출하만 더 거치면 올해 밤호박 꼭지 손질은 끝난다. 수확량이 적으니 일이 적어서 좋다. 벌써 1차 수확한 밤호박들은 밤즈님들에게 갈 준비를 마쳤다.


손질이 끝난 밤호박들은 꼭지가 연한 베이지색으로 말라 있었다. 브러시를 거친 껍질은 반질반질 윤이 났다. 며칠 동안 쪼그려 앉아 손목이 뻐근해질 만큼 다듬었으니, 안 예쁘면 그게 더 섭섭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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