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당근 수확시기
당근 품종에 따라 수확시기는 달라진다. 씨앗봉투에 언제 수확하면 좋은지 써져 있기도 하니 참고하면 된다. 올해 봄에 파종했던 신흑전5촌은 중생종으로 파종 후 90~100일쯤에 수확한다. 날짜를 계산하는 것보다 자람세를 보고 수확시기를 판단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수확시기가 다가오면 잎이 쳐지고, 둥글게 올라온 당근이 약간 평평하게 변한다.
2026년 봄 당근 재배일지
- 3월 13일 파종
- 4월 15일 1차 솎음
- 5월 8일 2차 솎음
- 6월 5일 수확(파종 후 85일째)
올해 봄 당근은 '망'했다기보다 '실망'스러웠다. 그래도 식구들 뱃속으로 들어갈 녀석들이라 흐물거린 부분만 잘라내고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당근솎음에 관해 만든 영상을 보고 지나가던 분이 한번 더 솎아도 될 것 같다는 댓글을 남겨 주셨다. 적당히 두 번 솎았다고 생각했는데 혹시 내가 빠뜨리고 뽑지 않은 당근이 있나 싶어 한번 더 살펴보았다. 약간 비좁아 보이는 곳에서 당근 네 개를 뽑았다. 흙을 털어내니 주황빛 몸통이 길쭉하게 드러났다. 아직 작았지만 제법 당근다웠다. 솎아낸 당근은 껍질을 살살 벗겨내고 한 입 베어무니 달큰하다.
'이대로만 자라준다면 가을에도 여기서 키워도 되겠는데?'
제일 큰 걱정은 물빠짐이 좋지 않은 곳에 당근을 파종한 것이었다. 그래서 다른 어떤 해보다도 더 높게 두둑을 만들기도 했다. 수확이 다가올 때쯤 뽑았던 당근의 모양을 보니 가을 당근도 이곳에 파종해도 될 것 같았다.
폭우가 내렸다. 당근 두둑은 물에 잠기지 않았지만, 그 옆 넓은 두둑은 1/3쯤 잠기고 고랑엔 물이 고였다. 당근 자람세가 괜찮아 보여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때는 몰랐다.
폭우 이후 강한 햇살이 내리쬐기 시작했다. 여름이 왔다. 흙이 조금만 더 마르면 수확할 생각이었다. 폭우가 지나갔으니 며칠만 기다리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당근 잎이 계속 쳐지기 시작했다. 어깨를 드러낸 당근을 보니 수확해야 할 것 같았다.
달력에는 아직 수확 날짜가 한참 남아 있었다. 며칠 더 두어야 했지만 궁금해서 하나를 뽑았다.
"오~~!!"
생각보다 괜찮았다.
통통함은 덜하지만 날씬하게 쭉 뻗은 모양새가 마음에 들었다. 하나 뽑은 김에 이르긴 하지만 전부 수확하기로 했다.
비 온 뒤 흙이 완전히 굳은 상태가 아니라서 당근은 쉽게 뽑혔다. 매년 모종삽으로 파면서 힘들게 뽑았는데 물이 다 빠지기 전에 수확하니 수월했다. 잎만 뽑히는 것도 더러 있었는데 올해는 그런 것도 없이 너무 쉽게 뽑혀 이상할 지경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 다음부터였다. 뿌리가 녹아내리고 있었다. 벌레가 먹은 흔적도 있었다. 달력에 적어 둔 날짜까지 두었다면 건질게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른 수확이라 망설였지만 빠르게 뽑길 잘했다.
다 버려야 하나 고민하고 있으니 옆 밭 할머님이 물으셨다.
"벌써 밑이 들었어?"
나는 대충 웃어 넘겼다. 햇볕에 잠시 말려두고 칼을 가져왔다. 밑둥을 잘라내니 속은 상태가 멀쩡했다. 이러면 먹어도 되겠다 싶어 모두 손질을 했다. 다듬고 보니 제대로 자란 건 반도 되지 않았다. 제대로 자란 당근 몇 개를 할머님께 드렸다. 웃거름을 하지 않아서 사이즈가 작다는 말과 함께.
손질을 끝낸 당근들은 냉장고 한 칸에 차곡차곡 들어갔다. 기대했던 만큼 굵지도 않았고, 절반 가까이는 밑동을 잘라내야 했다. 그래도 씻어서 한 입 베어 물어 보니 달았다. 모양은 아쉬워도 당근은 당근이었다.
올해 봄 당근은 성공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실패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아쉬움이 더 많이 남은 재배였다. 가을에는 다른 자리에 씨앗을 뿌려볼 생각이다. 물이 잘 빠지는 곳으로. 실망을 곱씹고 있기에는 가을 당근을 파종할 시기가 어느새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