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오이에게 휘둘렸다

오이 모종심고 첫 수확까지 57일의 기록

by농부아내


여름 효자 작물이기도 한 오이는 모종심는 것부터 시작하면 수확하는 재미까지 느낄 수 있다. 오이 모종은 늦서리가 끝나는 5월 초순쯤 심는 것이 안전하다. 지역에 따라 조금 차이는 있지만, 낮 기온이 안정되고 밤 기온도 크게 떨어지지 않을 때가 적기다. 퇴비와 비료, 살충제 등을 뿌려 밭만들기를 한 뒤 모종을 심는 것이 좋다. 30~50cm 간격으로 모종은 심는다.


오이 품종에 따라 재배방식은 달라진다. 백다다기와 가시오이의 경우 원줄기 재배방식으로 키우는 경우가 많다. 원줄기 재배는 본줄기에 오이를 매다는 방식으로, 곁순을 계속 제거해 주면 된다. 첫 오이는 대체로 6~8번째 마디 사이에 착과시킨다. 오이가 매달렸을 때 땅에 닿지 않을 높이에서 첫 착과를 시작하면 관리가 수월하다.


웃거름은 모종을 심고 15~20일 후 1차로 주고, 이후 15~20일 간격으로 2~3회 정도 추가하면 좋다. 다만 자람세가 좋다면 날짜보다 상태를 보고 조절해도 괜찮다. 암꽃이 피기 시작할 무렵 첫 웃거름을 주는 방법도 많이 쓴다.


오이는 꽃이 피고 7~10일 정도 지나면 수확이 가능하다. 날짜보다는 자람세를 보고 판단하는 것이 좋다. 크게 키우기 보다 길이가 20~25cm 정도 될 때 따 주는 것이 좋다. 그래야 다음 열매가 더 빨리 자라고 수확도 계속 이어진다. 수확할 때마다 아랫잎이나 병든 잎을 함께 제거해주면 통풍도 원활하고, 병해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2026년 오이 재배일지
- 4월 8일 백다다기, 가시오이 아주심기(각 2주)
- 4월 29일 1차 웃거름(22일째)
- 5월 17일 2차 웃거름(1차 이후 19일째)
- 6월 1일 붕산 액비
- 6월 3일 첫 수확(아주심기 후 57일째)






텃밭에 오이를 들인 지도 벌써 3년째다. 그런데도 아직 오이는 어렵다. 어떤 해에는 물만 줘도 잘 크고, 어떤 해에는 금세 재배를 접어야 할 만큼 자람세가 좋지 않기도 했다. 내게 오이는 늘 내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작물이었다.


좌 : 4월 14일 / 우 : 5월 17일


모종을 심고 나서는 다른 작물들처럼 물을 자주 줬다. 빨리 뿌리를 내렸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잎이 노랗게 질리기 시작했다. 순간 겁이 났다.


“내가 또 과했구나.”


연애 초반에 고백한 사람이 더 애를 태우듯, 나 혼자 애정을 쏟아붓고 있었던 셈이다. 며칠 동안 물 주는 횟수를 줄이고 거리를 두자 오이는 다시 초록빛을 되찾았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 이후로는 물을 2~3일에 한 번 정도로 조절했다. 곁순과 암꽃, 수꽃도 원하는 위치가 나올 때까지 하나씩 제거했다. 오이와 만난 지 22일째 되는 날에는 첫 웃거름도 줬다. 이후로 줄기가 굵어지고 잎이 커졌고, 그물에 줄기를 올렸더니 덩굴손이 지지대를 타고 스스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좌 : 아들줄기에 오이를 매달기 시작한 백다다기 1호(6월 3일)/우 : 아들줄기 수확(6월 7일)


문제는 물 수발을 위해 물통을 설치한 이후부터였다.

백다다기 2개, 가시오이 2개를 심었으나 백다다기 1개(1호)가 자람세가 느렸다. 또 내 애정이 과했나 싶어 다른 녀석들에게 물을 줄 때 한번씩 제외시키곤 했다. 그런 식으로 백다다기 1호와 밀당을 하다가 물통을 설치한 이후로는 자주 물을 주게 되었다.


갑자기 쏟아진 내 애정에 놀라다 못해 생장점이 말라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냉해인가 싶었지만 포근한 5월 중순이었다. 우리의 애정이 무르익기 좋은 계절에 너는 왜 내게 이런 시련을 주는지 모르겠다며 이마 주름이 깊어졌다. 곁순을 남겨 두었더니 아들순이 자라 암꽃이 피었고 오이를 매달았다. 아들순에 매달린 오이는 마트 오이만큼 이쁘진 않았지만 맛은 틀림없는 오이였다. 게다가 아침마다 쏟아부은 물 수발이 마음에 들었는지 쓴맛도 없었다.


그제사 또 동동거리던 마음이 가라앉고, 굽신거리던 허리가 펴졌다.


백다다기 2호(6월 10일) 마지막 남은 오이 수확


허리가 펴진 것도 잠시, 잘 자라던 백다다기 2호의 생장점도 고사하기 시작했다.


너는 또 왜 그러는데..


나는 또 울상이 되었다. 검색을 해보고 붕산을 주기로 했다. 농부님의 손을 빌려 물에 타서 하우스 텃밭 작물들 모두에게 주었다. 하지만 마르기 시작한 백다다기 2호는 살아나지 못했다. 남겨둔 곁순도 없어서 백다가기 1호처럼 아들순이 자라지도 않았다. 며칠 전 마지막 네번째 백다다기 오이를 따고 뿌리를 뽑았다. 헤어질 땐 미련없이 돌아서는 편이다. 물수발을 해야할 오이가 하나 줄어 후련한 마음마저 들었다.


주렁주렁 가시오이(6월 3일)


밀당을 오지게 하던 백다다기와 달리 가시오이는 내 애정을 주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밀당없이 서로 손발이 잘 맞는 천생연분같은 사이였달까. 처음 가시오이를 키웠던 2024년에는 키우기가 힘들었는데 올해는 순항해서 무사히 내 손에 길다란 오이를 안겨 주었다.


6월 3일 첫 수확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9개의 가시오이를 땄다. 타이밍을 놓쳐 너무 큰 사이즈를 수확하는 바람에 서걱한 식감을 가지긴 했지만 이정도면 만족스럽다. 다만, 물수발에도 불구하고 꼭지쪽 쓴맛은 어쩔 수 없었다. 엄지손가락 한마디 정도 잘라내야 쓴맛이 없었다. 그래서 올해는 쓴맛없는 오이를 실컷 먹고 있다.


지금은 아들순이 자라는 백다다기 1호와 가시오이 두 포기가 열심히 오이를 매달고 있다. 수확한 오이는 밑반찬이 되고, 냉국이 되고, 피클이 되었다. 그렇게 먹고도 냉장고 한 칸을 차지하고 있는 걸 보면 오이는 참 부지런한 작물이다.


아침에 하우스 문을 열면 가장 먼저 오이부터 찾게 된다. 어제는 분명 없었던 것 같은데 하루 사이 훌쩍 자라 있는 녀석도 있다. 손에 쥐고 있던 가위를 들고 한참을 바라보다가 수확할지 하루 더 둘지 고민한다.


올해도 오이 때문에 몇 번이나 마음을 졸였다. 너무 물을 줬나 싶어 걱정했고, 생장점이 마르기 시작하면 인터넷을 뒤적이며 이유를 찾았다. 어떤 녀석은 끝내 살아나지 못했고, 어떤 녀석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오이를 매달아 주었다. 그래도 내년 봄이 되면 또 오이 모종부터 장바구니에 담고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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