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 곁순을 바로 따지 않은 이유

고추 순치기와 웃거름 주는 시기

by농부아내


고추는 아주심기 후 뿌리가 안정적으로 활착하면 키가 빠르게 자라고 곁순도 올라오기 시작한다. 이때 곁순이 보인다고 바로 제거하기보다, 상단부 잎이 어느 정도 풍성해진 뒤 정리하는 것이 좋다. 아직 잎 수가 적은 초기에는 광합성과 생육에 필요한 잎 하나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고추는 자라면서 Y자 형태로 줄기가 갈라지고, 그 위로 계속 분지가 생긴다. 첫 번째 갈라지는 분지를 흔히 ‘방아다리’라고 부른다. 방아다리에 피는 첫 꽃은 보통 제거하는데, 첫 꽃이 보이자마자 따기보다 3분지 정도에 꽃봉오리가 형성됐을 때 제거하는 편이 안정적이다. 특히 초기 생육이 약하거나 성장이 더딜 때는 첫 꽃 제거가 뿌리 활착과 이후 세력 확보에 도움이 된다.


웃거름은 아주심기 후 약 20~30일 사이에 1차로 주고, 이후 자람세를 보며 20~30일 간격으로 2회 정도 추가하면 된다.


2026년 고추 재배일지
- 4월 8일 아주심기
- 4월 29일 1차 웃거름
- 5월 17일 2차 웃거름






비닐하우스에 심은 덕분인지 올해 고추들은 유난히 자람세가 좋다. 며칠 사이 키가 쑥 올라왔고 잎색도 짙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름표였다. 모종 심을 때 정신없이 꽂아둔 탓인지 아무래도 위치가 뒤섞인 모양이었다. 꽃이 지고 나서야 누가 누군지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이름표 없이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녀석이 하나 있었다. 바로 가지고추였다. 꽃이 피기 시작하자 옅은 보라빛이 감돌았고 줄기에도 검붉은 기운이 스며 있었다. 다른 고추들 사이에 섞여 있어도 혼자만 분위기가 달랐다.


모종을 심고 기온이 오르자 마디마다 곁순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한창 밤호박 곁순을 치며 유인을 하던 시기라, 고추의 곁순에도 본능적으로 손이 갔다. 지저분해 보여서 빨리 정리해야 속이 시원해질 것 같아 바로 떼어내고 싶었다. 하지만 참아야 했다. 아직 키가 작은 고추에게 잎 하나는 소중했다. 곁순을 제거하면 그만큼 광합성할 잎도 줄어든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손은 자꾸 움직이려 했다. 고추를 키우면서 이런 순간이 제일 힘든 것 같다.


곁순은 그대로 두는 대신 웃거름을 주었다. 올해는 액비를 희석해서 사용하기로 했다. 큰 물조리개에 액비를 풀어 웃거름을 주면서 마음속으로 재촉했다.


얼른 자라라.

잎도 커지고 줄기도 굵어져서 내가 마음 편히 곁순을 떼어낼 수 있게.



며칠 지나자 확실히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방아다리 첫 꽃도 모습을 드러냈다. 꽃 하나 피우는 힘이면 뿌리와 줄기를 더 키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것도 기다려야 했다. 웃거름 덕분인지 고추들은 하루가 다르게 컸다. 세 번째 분지에 꽃봉오리가 보이고 방아다리의 첫 꽃도 활짝 피었다. 그제야 하나씩 제거하기 시작했다. 고추마다 자람세가 달라 그 무렵부터는 하우스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되었다.



고추 6주 중 마지막 첫 꽃을 제거하던 날 방아다리 아래 곁순 제거 작업을 했다. 어딘가에서 본 영상처럼 양손으로 위에서 아래로 쓸어내리며 한번에 제거할까 하다가 그건 내 스타일이 아니어서 하나씩 떼어냈다. 곁순은 모두 제거하되 아직은 잎이 많지 않아 방아다리 바로 아래 잎 몇 개는 남겼다. 잎이 더 풍성해지면 그때 방아다리 아래 잎은 모두 떼어낼 생각이다.


작년 장마철, 하우스에 물이 차서 지주대와 함께 고추가 쓰러졌었다. 그래서 올해는 농부님이 하우스 밖 배수로를 열심히 정리해주었다. 농부님의 삽질을 믿기로 하고, 줄은 고추가 쓰러지지 않을 정도로만 적당히 묶었다. 고추 줄을 메고, 페트병 급수기도 하나씩 설치했다.


두번째 웃거름은 급수기에 바로 넣어주었다. 큰 물조리개에 액비를 희석해 조금씩 나눠 부었다. 페트병 아래에 물이 조금씩 남는 게 아쉽긴 하지만 물 주는게 번거롭지 않아서 좋다. 어느새 꽃은 지고 작은 열매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며칠 더 지나면 이름표의 제자리를 찾아줄 수 있을 것 같다.


날씨와 적당한 물주기로 고추들은 순항 중이다. 무엇보다 올해 고추를 키우면서 성급하게 순을 치고, 꽃을 떼지 않은 내 자신을 칭찬하고 싶다. 나의 조급함 때문에 생긴 일들을 기록으로 남길 때마다 민망했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을 텃밭을 가꿔 오면서 당장 손대고 싶은 마음을 참은 건 처음이었던 것 같다. 텃밭은 작물을 키우는 것 같지만 내 마음을 다듬는 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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