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키운 시금치의 맛

봄 시금치 파종부터 수확시기까지

by농부아내


봄 시금치는 월동시금치 특유의 진한 맛에는 미치지 못해도, 연한 잎의 부드러운 식감 덕분에 봄 밥상에 잘 어울리는 작물이다. 특히 봄철에는 빠르게 자라기 때문에 텃밭 초보자도 비교적 수월하게 키울 수 있다.


봄 시금치 파종시기는 기온이 오르기 시작하는 3월 중순부터 가능하다. 파종 방법은 줄뿌림, 흩어뿌림, 점뿌림 모두 가능하다. 줄뿌림은 20cm 정도 간격으로 골을 만든 뒤 2~3cm 간격으로 씨앗을 심는 방식이고, 흩어뿌림은 씨앗을 넓게 흩뿌려 키우는 방법이다. 점뿌림은 15~20cm 간격으로 씨앗을 2~3개씩 넣어 심는다. 어떤 방법으로 심더라도 발아 후에는 자람새를 보며 튼튼한 것만 남기고 솎아줘야 한다.


봄 시금치 수확시기는 파종 후 약 30~40일 경과시점이다. 날짜보다 중요한 건 잎의 크기와 상태다. 손바닥 정도 크기로 자랐을 때 원하는 만큼 수확하면 되고, 꽃대가 올라오기 전 수확을 마치는 것이 좋다. 봄기온이 빠르게 오르면 순식간에 꽃대가 생기기 때문에 수확 시기를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2026년 봄 시금치 재배일지>
- 3월 13일 파종
- 4월 12일 솎음
- 5월 1일 수확(파종 후 50일째)






작년 월동시금치 재배가 수월하지 않아 적은 양을 수확했다. 아쉬움이 커서 맛이 월동에 비해 덜하긴 해도 밑반찬으로 시금치만한 건 없어서 올해 봄에는 많은 양의 시금치 씨앗을 심었다. 삶은 뒤 얼려 두었다 먹을 계산이었지만 농사일이 바빠 생각대로 하지 못했다.


3월 22일


올해 초봄 날씨는 별스러웠다. 낮에는 햇볕이 따뜻해도 밤공기는 아직 겨울에 가까웠다. 예년보다 서리도 오래 남았다. 그래도 나는 씨앗을 심었다. 기온이 천천히 오르면 결국 싹은 올라올 거라 믿고 있었다. '토토로'의 메이와 사츠키처럼 싹이 올라오길 바라며 매일 물을 주었다. 다행히 시금치는 열흘쯤 지나 싹을 올렸다. 하나 둘 고개를 내밀기 시작하니 그제사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가장 어려운 고비는 넘긴 셈이었다. 시금치는 싹만 무사히 올라오면 이후에는 비교적 수월하게 키울 수 있다.


4월 12일


솎음이 필요한 텃밭 작물들은 한꺼번에 하려고 버티고 있었다. 한번에 끝내면 일이 줄어들 것 같았다. 그런데 작물마다 자라는 속도가 달랐다. 열무와 얼갈이는 금세 커졌는데 시금치는 조금 더디었다. 계획대로 함께 솎음을 하진 못했다.


더디다 싶었지만 시금치만 놓고 본다면 잦은 봄비 덕분에 빠른 속도로 자라 작은 구멍마다 초록 잎들이 빽빽하게 차오르기 시작했다. 드디어 솎음을 할 때가 왔다. 잎이 제일 큰 하나만 남기고 모두 뽑았다. 빽빽하던 밭의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4월 26일


솎음 이후 내가 할 일은 없었다. 봄비만으로도 충분했다. 나는 가끔 텃밭에 들러 얼마나 컸는지 보는 정도였다. 달력에 적어 둔 시금치 수확예정(40일) 날짜는 4월 21일이었다. 하우스에서 일이 끝나고 늦은 오후에 들른 텃밭의 시금치는 꽤 그럴듯하게 자라 있었다. 자람새는 제각각이었지만 당장 수확해도 될 정도였다. 그런데 문제는 내 체력이었다. 하루 종일 하우스에서 일하고 난 뒤라 남은 기운이 없었다. 수확만 하면 끝나는 것도 아니었다. 씻고, 데치고, 무치고, 소분하고… 그 이후의 과정까지 생각하니 갑자기 엄두가 나질 않았다.


‘내일 하지 뭐.’


그렇게 하루를 미뤘다.


5월 1일


나는 미루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데, 이상하게 농번기만 되면 자꾸 그렇게 된다. 오늘 못 한 일은 내일로 밀리고, 내일은 또 다른 일에 밀린다. 그렇게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지나간다. 한번 미룬 수확은 결국 파종 후 50일이 되어서야 다시 찾아왔다.


더는 안 되겠다 싶어 텃밭으로 갔다. 그날이 우연히 딱 파종 50일째였다. 시금치는 예상보다 훨씬 커져 있었다. 칼을 흙 아래로 밀어 넣어 싹둑 자르자 핑크빛 뿌리가 드러났다. 뿌리도 제법 굵어져 있었다. 처음에는 큰 것만 골라 수확하려 했다. 그런데 하다 보니 거의 전부 뽑아야 할 정도였다. 50일이나 지났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양이 너무 많다. 삶아서 소분해 얼려두면 되는데, 막상 그 일을 생각하니 또 귀찮아졌다. 결국 전체의 4분의 1 정도는 남겨두고 돌아왔다.



그날 저녁 식탁에 시금치 무침이 올라왔다. 둘째가 한입 먹더니 “맛이 다르다”고 했다. 순간 웃음이 났다. 아이도 이제 월동시금치 맛을 기억하는 모양이었다. “이건 봄 시금치라서 그래.” 이야기해 주니 다시 한 젓가락 먹으며 부드럽다고 했다.


내가 그렇듯 아이가 어른이 된 뒤에도 엄마가 텃밭에서 키워 식탁에 올리던 채소들의 맛을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월동시금치의 진한 단맛과 봄 시금치의 부드러운 맛 차이까지 떠올릴 수 있다면 더더욱 좋겠다. 잘 키우는 것보다, 많이 수확하는 것보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계절의 맛 하나쯤 남겨두고 싶은 마음으로 텃밭을 계속 가꾸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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