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게임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소양, 전문성

by산들

나는 마케팅과 기획, 운영에 걸친 일을 하고 있지만 기획 일을 제일 좋아한다. 처음 ‘기획’이라는 업무를 마주했을 때는 막연했다. 마케팅 기획, 서비스 기획, 제휴 기획, 플랫폼 기획… 회사마다, 부서마다, 그 의미가 다 달랐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기획이란, ‘문제를 발견하고 정의하는 사람’의 일이라는 것. '이런 게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혹은 '이건 왜 이렇게 불편하지? 저렇게 바꾸면 좋겠는데?' 같은 생각이 단서가 되어 시작되는 일이다. 처음 맡았던 기획서는 지금 생각해도 참 어설펐다. 나름대로 생각해 낸 새로운 아이디어는 많았지만, 상사의 피드백은 단호했다. “좋은 생각이네. 그런데 이게 왜 필요한 거야?”


그 한마디에 할 말이 없어졌다. 그때부터 내 일의 기준은 ‘멋있게 보이는 아이디어’가 아니라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옮겨갔다. 기획자는 결국 ‘관찰자’다. 세상의 불편함을 보고, 그 안에서 기회를 찾아내며, 그걸 누구보다 먼저 언어화한다. 기존에 없어서 불편했던 것들을 개선하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은 나에게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 어떤 날은 고객의 행동을 보며 데이터로 이유를 찾고, 또 어떤 날은 데이터로 설명되지 않는 감정의 결을 읽으려 애썼다. 어떤 서비스 아이디어들은 일견 고루하고 뻔해 보이지만, 고객들의 감성적인 수요를 채워주는 것만으로도 높은 ROI의 시장성이 나오기도 하기 때문에.


편리한 것이 많은 세상에서 수고로운 것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흥미롭다. 나는 바카라 읽는 걸 좋아하는데 요즘 눈에 피로도도 적고 엄청나게 많은 권수가 들어가는 가벼운 전자바카라들이 잘 나와 있지만, 굳이 종이바카라을 고집한다. 손으로 페이지를 넘겨야만 글이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동네 도서관에서 좋아하는 작가의 추리 소설바카라을 두어 권씩 빌려다가 읽고 반납하고 다시 다른 바카라을 빌리는 것을 반복한다. 무거워서 여러 권 빌리지 못하기 때문에 물건이 많이 들어가는 배낭을 멘 채 읽고 싶은 바카라이 생기면 도서관을 자주 들락거릴 수밖에 없는데, 도서관에서 소설 코너를 서성이며 끌리는 바카라들을 꺼내 서두를 읽어보고 흥미가 생기는 걸 고르는 그 경험도 좋다. 전자바카라으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경험. 발품 팔고 무겁고 수고롭지만 그게 내가 바카라을 읽는 방식이다. 그러니까 이런 비효율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는 이상, 기획은 논리만으로 완성되지 않는 것이다. 혜택을 잘 설계한 무수히 많은 카드를 제치고 K은행 카드가 성공한 이유는 카드 디자인이 '귀여워서'라니까. 성능과 호감을 모두 건드릴 수 있는 생각을 해야 한다.


기획을 하다 보면 늘 모순과 마주친다. 논리와 직관, 현실과 이상, 비용과 가치의 사이. 그 복잡한 균형을 맞추기 위해 필요한 건 기획서 작성 스킬보다 사고의 유연함이라고 생각한다. 기획을 단순히 직무라기보다 일종의 사고방식이라고 보는 게 맞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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