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가 실망이 될 때 버티는 방법
누구나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기대를 품는다. 나를 이해해 주길, 내 마음을 알아주길,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움직여 주길 바란다. 대단한 걸 바라는 것도 아니다. 이 정도면 되겠지, 이번에는 괜찮겠지 하는 소박한 바람이다. 그런데 그 소박한 기대가 무너질 때의 충격은 전혀 소박하지 않다. 기대의 크기만큼이 아니라, 기대의 믿음만큼 아프고 쓰라린 상처가 된다.
곰곰이 들여다보면, 그 기대의 밑바닥에는 불편한 마음이 숨어 있다. 타인을 내 뜻대로 움직이고 싶은 욕망이다. 저 사람이 이렇게 해줬으면, 상황이 이렇게 흘러갔으면 하는 마음. 겉으로는 믿음이나 바람처럼 보이지만, 실은 통제하고 싶은 마음에 가깝다. 내가 품은 기대의 상당수는, 사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을 어찌해 보려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세상에는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내 태도, 내 노력, 내 선택은 내 몫이다. 하지만 타인의 마음이나 결정, 상황의 흐름은 내 몫이 아니다. 기대는 결국 통제 불가능한 영역을 내 의지로 다스릴 수 있다는 착각이다. 그러니 그 착각이 깨지는 순간 평정심이 흔들리는 것도 당연하다. 애초에 내 것이 아니었는데, 내 것처럼 붙들고 있었으니까.
이번 연휴가 그랬다. 품었던 일말의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었고, 그 실망은 생각보다 오래 머물렀다. 가족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도 마음 한구석은 계속 딴 데 가 있었다. 괜찮은 척 웃었지만, 혼자 있는 시간이면 같은 생각을 몇 번이고 되감았다. 머리로는 알았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이었다는 걸. 그런데 내 마음이 그걸 받아들이는 데에는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주변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와 비슷한 처지였을 사람들, 저마다의 기대가 무너진 채로 명절을 보냈을 사람들. 그들도 아마 웃으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아무렇지도 않게 하루를 넘겼을 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내 마음에 갇혀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주변 사람들의 그늘이, 한 발 물러서고 나서야 보이기 시작했다.
연휴 중에 박완서 님의 소설집 ≪기나긴 하루≫를 펼쳤다. 그리고 후반부에 실린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이라는 단편에 오래 머물렀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주인공은, 남들 앞에서는 담담하고 꿋꿋한 척 버텨왔다. 그런 그에게 형님은 이제 다 극복한 줄 알았다고 쉽게 말한다. 그 말 앞에서 주인공은 끝내 그간의 울분을 터뜨리고 만다.
"형님 보시기에도 제가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아 보입디까? 아무렇지 않지 않은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면 그게 얼마나 눈물겨운 노력의 결과였는지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으시죠."
그 대사를 읽고 한참을 바카라장을 넘기지 못했다.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사람이 사실은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니라는 것. 그 평온해 보이는 얼굴이 얼마나 필사적인 노력의 결과인지를, 곁에 있는 사람은 좀처럼 알지 못한다는 것. 어쩌면 우리가 무심코 건네는 괜찮아 보인다는 말이, 누군가에게는 가장 아픈 말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리고 그 진실을 이제야 알았다.
물론 내 실망은 소설 속 슬픔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감히 나란히 놓을 수조차 없다. 다만 그 문장이 알려준 것이 있다. 누구나 저마다의 무게를 안고, 아무렇지 않은 척 하루를 산다는 것. 기대하고, 설레고, 실망하고, 그러고도 다음 날 아침이면 다시 집을 나선다는 것.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렇게 놓고 보면,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모든 얼굴이 이제 조금 다르게 보인다.
다시 시작해 보려 한다. 무너진 기대를 억지로 붙잡지도, 애써 잊으려 하지도 않고. 통제할 수 없었던 것은 내려놓고, 통제할 수 있는 것부터 다시 챙겨보려고 한다. 회복탄력성이라는 게 별게 아니지 싶다. 넘어지지 않는 힘이 아니라, 넘어진 채로도 다음 하루를 시작하는 힘. 대단하진 않아도, 그 정도는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아침 운동도 다시 시작하며 마음을 다잡는 중이다.
연휴가 끝나고, 다시 평범한 하루다. 달력을 보니 2026년도 어느새 몇 달 남지 않았다. 올해 기대했던 것들 중 어떤 건 이뤄졌고, 어떤 건 끝내 오지 않았다. 마음이 잠시 멈춘 동안에도, 시간은 나를 한 번도 기다려주지 않은 채 어김없이 흘러가는 중이다. 나도 누군가의 눈에는 아무렇지 않아 보이려 노력하고 있다. 그게 얼마나 애쓴 결과인지는 몰래 감춘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