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지 밖에서 새로운 나를 만나다.

나를 부정하던 내가, 다시 나를 긍정하기까지

byRyan Choi

과거 오랫동안 나는 소위 '모범생'이었다. 시스템 안에서 잘 굴러가는 사람. 시키는 건 대체로 잘 해냈고, 성적도 나쁘지 않았고, 판을 빠르게 읽어 그에 맞게 움직이는 데 익숙했다. 조직이 뭘 원하는지 정확히 읽어내고 해내는 것, 그것이 내가 잘 해낼 수 있는 능력이라 믿었다. 어떤 이들은 그런 나를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나는 그런 나를 부끄럽게 여겨왔다.


사실 내가 되고 싶었던 모습은 오히려 정반대였다.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사람, 슬슬 놀면서도 잘하는 사람, 규칙 밖에서 자기만의 길을 만드는 그런 사람이 훨씬 더 멋져 보였다. 그에 비하면, 시키는 것만 성실히 해내는 나는 어쩐지 시시해 보였다. 그래서 난 내가 가진 것을 부정했다. 뭐든 잘 해내려 노력하면서도, 그런 나를 마음속으로는 깎아내리며 살았다.


그렇게 나를 부정하기만 하던 시절이 꽤 길었다. 제대로 된 변화가 찾아온 것은 40대에 들어서면서부터다. 어느 날 문득, 일이 너무 익숙해지고, 앞으로의 삶에 큰 변화도 없겠구나 싶었다. 그 예측 가능한 경로가 훤히 보이는 그 삶이 너무 답답하게 느껴졌다. 안정적인데 답답하다니, 이상한 감정이었다. 그런데 그 답답함이 사실은 내 안에서 무언가 깨어나고 있다는 신호였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권태와 불안이었다. 쇼펜하우어의 그 문장이 떠올랐다. "생은 고통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와 같다." 결핍이 채워지면 권태가 오고, 권태를 벗어나려 하면 다시 불안이 오는 것. 나는 안정이라는 이름의 권태 한복판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 권태가, 역설적으로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이 처음으로 매우 선명해졌다.


그때부터 나는 처음으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찾기 시작했다. 아무도 정답을 안 알려주는 채로. 학창 시절엔 늘 정답이 있었다. 시키는 걸 잘하면 그만이었으니까. 근데 이건 달랐다. 뭘 좋아하는지, 뭘 할 때 살아 있다고 느끼는지, 그 답은 나만이 찾을 수 있었다. 그게 내 진짜 호기심의 시작이었다. 그때부터 처음으로 내가 뭘 좋아하는지를 스스로 찾기 시작했다.


신기한 건, 나를 더듬어가다 보니 예전에 부끄러워하던 내 모습이 다시 보였다는 거다. 성실함과 꾸준함. 시시하다고 여겼던 그것이, 알고 보니 아무나 가진 게 아니었다. 재능 있는 사람은 많아도, 그걸 오래 밀고 가는 사람은 드물었다. '모범생'이라는 게 버릴 껍데기가 아니라, 나를 여기까지 끌고 온 뿌리였다. 그건 부정할 게 아니라 써먹었어야 할 자산이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그 많던 모범생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학창 시절 성실했던 그 많은 사람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어쩌면 그들 중 상당수도 나처럼 자기를 부정하며 방황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난 이제 안다. 공부가 남긴 진짜 흔적은 성적이 아니라, 무언가를 진득하게 파고드는 태도라는 것을. 그리고 공부는 내용만 바뀔 뿐, 평생 이어진다는 것도.


배움이란 것이 꼭 지식을 쌓는 일만이 아니었다. 교양을 익히고, 삶의 태도를 다듬고, 타인을 배려하고, 공동체에 기여하는 분별력을 갖춘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었다. 학창 시절의 공부가 삶의 궤도를 바꿀 수 있던 시절이 있었다면, 이제는 다른 종류의 공부가 나를 만들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것. 그것이야말로 마흔의 내가 시작한 공부였다.


그리고 그 공부의 한가운데에 바로 글쓰기가 있었다. 2022년의 어느 날, 나는 이곳에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었다. 그냥 나를 좀 정리하고 싶었다. 그런데 쓰다 보니 내가 뭘 생각하는지, 뭘 좋아하고 뭐에 흔들리는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부정하던 나를 긍정하게 된 데는, 이 글쓰기가 큰 몫을 했다.


돌아보면 나는 나를 부정하느라 참 오래 돌아왔다. 남이 되고 싶어 정작 나를 미워했던 시간들. 하지만 마흔 중반이 넘어서야, 나는 겨우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기 시작했다. 모범생이었던 것도, 성실했던 것도, 이제는 부끄럽지 않다. 그것이 나였고, 앞으로도 나일 테니까. 나를 긍정하는 것, 그것은 결국 긴 방황 끝에 다시 내게로 돌아오는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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