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생각들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방법

byRyan Choi

어린 시절에는 내가 원하는 것은 노력만 하면 모두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이루지 못한 것이 있다면, 그건 순전히 내 능력이나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은 정직한 곳이어서, 애쓴 만큼 돌려준다고 여겼다. 하지만 나이를 한 살 두 살 먹어가며, 그 생각이 얼마나 일차원적이었는지 조금씩 깨닫게 됐다. 세상은 그렇게 공평한 곳이 아니었고, 단순하게 움직이는 곳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세상은 나 혼자 잘났다고 살아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 속에서 부딪히며 살아가야 하는 곳이었다. 내가 바라는 대로 움직여주지도 않고, 나를 무조건 받아들여주지도 않는다. 거절도 당하고, 고통도 겪게 되며, 하고 싶지 않은 일도 해야 한다. 말도 섞기 싫은 사람과 나란히 함께 앉아 일해야 하는 순간도 찾아온다. 그것이 내가 뒤늦게 마주한 이 세상의 진짜 얼굴이었다.


그렇게 부대끼며 살다 보니 하나 깨닫게 된 것이 있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이 찾아올 때,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보는 것이다. 이 일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어쩔 수 없이 떠밀려하는 것도 아니라는 마인드. 오직 내가 '나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 보는 것이다. 순전히 자기중심적인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생각을 바꿔보았더니, 그것이 만들어내는 차이는 생각보다 컸다.

대출금을 갚아야 해서, 아이를 키워야 해서, 가족을 부양해야 해서. 이런 슬픈 이유를 곱씹으며 힘들게 온라인 게임생활을 하다 보면, 어느새 나는 다른 사람과 다른 환경에 휘둘리고 만다. 내 삶의 방향을 남에게 내맡긴 꼴이 되는 것이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를 스스로 찾아보는 편이 낫다.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위해 해주는 것이라는 마음. 그 작은 마인드의 차이가 하루의 무게를 바꿨다.

이 관점은 힘든 상사를 대할 때 특히 힘을 발휘했다. 나는 실제로 같이 일하기 어려운 여러 상사를 모시면서, 뜻밖에도 많은 것을 배웠다. 업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상사와 일하면서는, 어려운 내용을 누구나 알아듣게 쉽게 설명하는 기술을 연마했다. 감정 기복이 심한 상사와 일하면서는, 언제 어떻게 보고해야 효율적으로 일을 마칠 수 있는지를 터득했다. 돌아보면 그 시간이 나를 가르치고 키운 셈이다.


핵심은 관점이었다. 내가 힘든 상사에게 고통받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 시간은 그저 괴로움일 뿐이다. 하지만 이것을 하나의 배움과 성장으로 받아들이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마치 게임 속에서 어려운 스테이지를 하나씩 깨는 것처럼, 힘든 상사는 나를 단련시키는 훈련 상대가 된다. 같은 상황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자산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단단해진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사람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살다 보면 꼴도 보기 싫거나, 어이없는 헛소리를 하는 사람에게 맞춰줘야 하는 상황이 종종 생긴다. 하지만 예전 같으면 비굴하게 느껴졌을 그 순간이, 이제는 그렇지 않다. 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편하기 위해 맞춰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돈 드는 것도 아닌데, 한 번 맞춰주면 어떤가. 결국 그게 내게도 도움이 되는 건데.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물론 무조건 참고 맞춰주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선을 넘거나 내가 정해놓은 임계점을 넘어서는 사람은 과감히 손절한다. 그것 역시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서다. 카톡을 차단하고, 더 이상 그 사람에게 분노를 표시하거나 화를 내지 않으며 거리를 둔다. 화를 내는 것 또한 결국 내 감정을 소모하고 나 스스로를 갉아먹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키는 것도 나를 위해서, 끊어내는 것도 나를 위해서다.

결국 이 모든 판단의 중심에는 '나'가 있다. 맞춰주는 것도 나를 위해서고, 손절하는 것도 나를 위해서다. 참는 것도, 끊어내는 것도, 배움을 구하는 것도 전부 나를 위한 선택이다.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신기한 변화가 생겼다. 남에게 휘둘리며 끌려다니던 삶의 주도권이, 조금씩 내게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무언가 고민될 때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이 질문을 해본다. "이게 나를 위한 행동인가?"

나를 위한 생각을 중심에 두고 살아가면, 삶의 키를 내가 쥐게 된다. 똑같이 힘든 일을 하고, 똑같이 어려운 사람을 상대해도, 그 무게가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끌려다니는 삶이 아니라, 내가 선택하는 삶이 되기 때문이다. 세상은 여전히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지만, 적어도 그 세상을 대하는 내 마음만큼은 내가 정할 수 있다. 어쩌면 그것이, 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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