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내세우고 싶은 마음에 대하여
대학 시절, 도서관에 틀어박혀 온갖 바카라을 읽었던 적이 있었다. 공대를 다녔지만, 철학, 슬롯학, 역사, 동서양 고전 문학까지 손대며 스스로를 특별하다고 여겼다. 대가들의 바카라들을 두루 섭렵하며, 그것들이 곧 나의 격을 증명한다고 믿었다. 지금 돌아보면 우습기 짝이 없는 수준이었는데, 그때만큼은 진심이었다. '난 너희들과는 달라. 다양한 고급 지식을 갖춘 지성인이야.'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여기저기 티를 내고 싶어 안달이었다.
문제는 그 마음이 대학 시절로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속이 단단하지 못한 채로 겉을 부풀리려는 그 습성은, 나이가 들어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30대에도 인정욕구를 이겨내지 못했고, 40대가 되니 오히려 더 심해진 것 같았다. 온라인 게임에서도, 가정에서도, 친구나 동료들 사이에서도, 나라는 존재가 조금이라도 돋보이고 싶은 욕구가 자꾸 고개를 들었다. 나이가 들면 초연해질 줄 알았는데, 현실은 정반대였다.
그런데 사실 나는 거창하게 외향적인 성격도 못 된다. 나서서 떠들거나 대놓고 자랑하는 타입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다 보니 묘한 상태가 되었다. 조용하지만 관심은 받고 싶은, 이른바 '조용한 관종'이 되어버린 것이다. 대놓고 드러내지는 못하면서도 은근히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 생각해 보면 이 글쓰기조차도 어쩌면 그런 욕구의 한 수단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서 이런 고백을 하는 것 자체가 조금 멋쩍기도 하다.
내가 이 마음을 제대로 알아차리게 된 것은,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곁에서 지켜보고 나서였다. 일종의 거울 효과라고 해야 할까. 은근히 자신을 내세우는 사람들을 보면 처음에는 그럴듯해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안쓰럽거나 우습게 여겨지는 순간이 있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이상하게 낯익었다. 그게 바로 내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타인이라는 거울에 비추어 보았더니 비로소 나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지켜보면서 알게 된 사실이 하나 더 있다. 사람들은 잘 나가거나 꺼드럭 대는 사람보다, 오히려 조금 빈틈이 있어 돕고 싶은 사람에게 마음을 내준다는 것이었다. 완벽해 보이려 애쓰는 사람들 곁에는 사람들이 잘 모이지 않는다. 반면에 솔직하게 부족함을 드러내는 사람에게는 좀 더 마음이 기운다. 내가 그토록 대단해 보이려 애쓰던 노력이, 사실은 사람들의 마음에서 멀어지는 길이었던 셈이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물론 그 조용한 관종의 기질이 늘 나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인정받고 싶다는 그 욕구가 나를 더 달리게 한 순간이 분명 있었다. 남들에게 그럴듯해 보이고 싶어서 바카라 한 권을 더 읽었고, 뒤처지기 싫어 자격증과 학위를 취득했으며, 강의를 하고 바카라과 글을 썼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없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게을렀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인정욕구 그 자체를 너무 죄악시할 필요는 없을 것 같긴 하다.
문제는 욕구의 존재가 아니라, 그것이 내 속을 채우기보다 겉만 부풀리는 데 쓰일 때 생긴다. 최근에 와서야 비로소 알게 된 것 하나는 내면이 충실하지 못한 상태에서 부리는 허세와 자랑은, 그 효율이 지독히도 낮다는 사실이다. 애써 나를 부풀려봤자 돌아오는 것은 거의 없다. 오히려 손해를 보는 일에 더 가깝다. 겉으로 드러내려 할수록, 내면이 텅텅 비어 있음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손해는 여러 방향에서 돌아온다. 먼저 애써 잘 보이려 했던 상대에게 그렇다. 자신을 내세우는 사람을 보며 진심으로 감탄하는 이는 드물고, 대개는 속으로 거리를 두거나 심하면 비웃는다. 정작 내가 인정받고 싶은 대단한 사람 앞에서는 더하다. 진짜 고수는 상대의 밑천을 금세 알아보기에, 그들 앞에서의 허세는 그저 우스운 일이 될 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허세는 정작 나 자신에게도 별다른 만족을 주지 못한다.
잠깐의 우쭐함이 지나가고 나면, 남는 것은 언제나 공허함뿐이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방향을 조금 바꿔보려 한다. 인정욕구를 억지로 없애려 하기보다, 그 힘의 방향을 겉이 아니라 안으로 돌려보는 것이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독서가 아니라 나를 위한 독서, 인정받기 위한 글이 아니라 나를 정리하기 위한 글. 내면이 단단해지면 굳이 내세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여전히 가끔은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문득문득 올라온다. 아마 이 습성은 평생 나를 따라다닐 것 같다. 다만 예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제는 그 마음이 올라오는 순간을 알아차릴 수 있는 나름의 '근육'이 생겼다는 것이다. 오래 나를 지켜보고 몇 번이나 부끄러워한 끝에 붙은 근육이다. 욕구를 억누르려 애쓰는 대신, 그저 바라볼 줄 아는 작은 여백. 바로 그 약간의 여백만큼 나는 예전보다 좀 더 자유로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