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놓으니 오히려 가벼워졌다.
요즘 '포기'하는 것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실제로 포기할 일들도 부쩍 많아졌다. 예전 같으면 어떻게든 붙들고 씨름했을 것들을, 이제는 그냥 놓아 버린다. 처음엔 이게 좀 씁쓸했다. 어딘가 진 것 같은 느낌이 있으니까. 그런데 몇 번 놓아보고 나니 생각이 좀 달라졌다. 잘 놓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라는 생각도 하게 됐다. 무작정 버티는 것만이 답은 아니라는 걸, 이제야 조금씩 배우는 중이다.
제일 먼저 놓은 건 체력이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규칙적인 운동 습관을 몇 번이나 결심했는지 모른다. 새해마다 다시 다짐했다. 그런데 40대 중반이 되도록 끝내 습관으로 붙지 않았다. 몇 달간 아침 조깅을 하다가 이 핑계 저 핑계로 멈추는 패턴이 반복됐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수년을 시도했는데도 안 됐으면, 이건 그냥 안 되는 거구나. 의지 부족이 아니라, 애초에 의지로 되는 일이 아니었던 거 아닌가.
운동 말고도 그런 것들이 몇 개 있었는데, 어느 순간 인정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이를 악물고 나를 몰아붙이는 대신, 그냥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기로 했다. 매일 한 시간 대신 일주일에 두어 번, 그것도 안 되면 산바카라이라도 하는 식으로. 목표를 낮추는 게 처음엔 자존심이 상했는데, 신기하게도 그렇게 하니까 오히려 그만두지 않게 됐다. 무리한 계획은 며칠 못 가 무너지지만, 오히려 헐거운 계획은 의외로 오래갔다.
억지로 끌고 가는 게 아니라, 발을 맞춰 걷는 느낌이랄까. 사람에 대해서도 비슷해졌다. '저 사람도 언젠간 변하겠지, 내가 잘하면 달라지겠지.' 이제는 이렇게 누구에게 큰 기대를 걸거나 실망을 하지 않는다. 조금 시간이 지나 보니 이제 조금 알겠다. 사람이 변하는 거, 그거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나조차도 운동 습관 하나 제대로 못 바꾸면서, 남이 이렇게 저렇게 바뀌길 바라는 것이 애초에 무리였던 것이다.
기대를 내려놨다고 해서 그 사람을 미워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그냥 그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이려니 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바꾸려고 애쓰지 않으니 실망할 일도 없고,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낼 일도 많이 줄어들었다. 무엇보다 내 속이 편하다. 상대를 바꾸겠다고 헛되이 쏟던 그 에너지를, 이제는 오롯이 나를 위해 쓴다. 그것만으로도 하루가 한결 덜 피곤해졌다. 평정심을 유지하게 되었다.
이렇게 하나둘 놓다 보면 내 세계가 좁아질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그 반대였다. 안 되는 걸 붙들고 끙끙대던 힘이 사라지니까, 되는 것에 쓸 힘이 생긴 것이다. '포기'가 만들어낸 빈자리에, 엉뚱하게도 '여유'가 채워졌다. 비우면 채워진다는 말이 예전에는 그냥 듣기 좋은 말인 줄로만 알았는데, 겪어보니 이게 진짜였다. 덜어낸 만큼 가벼워지고, 가벼워진 만큼 조금 더 멀리 가게 되었다. 옛말이 틀린 게 없었다.
물론 나도 여전히 헷갈릴 때가 있다. 이게 현명한 내려놓음인지, 아니면 그냥 나이 들어 편한 쪽으로 도망치는 것인지, 솔직히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예전보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여유가 생겼다는 사실이다. 붙들 것과 놓을 것을 구분하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잘 내려놓는 사람이 더 멀리 간다던데, 나도 언젠가는 그런 쪽에 속했으면 좋겠다. 이제는 슬기로운 포기를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