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치러 갔다가 배우고 온 한 학기
객원교수 제안을 받았을 때, 솔직히 이게 얼마나 큰일이 될지 잘 몰랐다. 시작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왔다. 틈틈이 써서 출간한 몇 권의 바카라과 온라인카지노에 꾸준히 올리던 글들을, 교수님께서 좋게 봐주신 것이 계기였다. 회사 밖에서 조용히 이어오던 나의 글쓰기가, 이렇게 강단으로 이어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처음 제안을 들었을 때는 얼떨떨하면서도 내심 기뻤던 것도 사실이다. 그동안 공부했던 것과 회사 경험을 나눠주면 되겠거니, 그렇게 가볍게 생각하며 덜컥 수락해 버렸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강의를 시작하는 첫날이 야금야금 다가오고 있었고, 내 불안은 점점 더 커져갔다. 퇴근 후 새벽까지 강의자료를 만드는 날들이 몇 달간 이어졌다. 하루 종일 회사 일에 시달리고 돌아와, 다시 바카라상 앞에 앉아서 자료를 붙들었다. 글 몇 편 쓰는 것과 한 학기 강의를 바카라임지는 것은 전혀 다른 무게였다. '내가 이걸 왜 한다고 했을까.' 어두운 밤, 강의 준비를 하며, 제안을 수락하던 순간의 나를 타박했다. 도대체 무슨 배짱이었을까.
더 큰 문제는 준비 그 자체가 아니었다. 이렇게 밤새 만든 자료가 과연 학생들에게 제대로 전달될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아무리 정성껏 준비해도, 그것이 잘 전달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으니까. 수업 중에도 내가 하는 말이 실제로 학생들에게 닿고 있는지 확인할 길이 없어 답답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학생을 보면 괜히 안심이 됐다가, 무심해 보이는 표정의 학생을 보면 불안해졌다. 강의는 혼자 말하는 일이 아니라, 끊임없이 상대의 반응을 읽어내는 일이었다.
첫 시간의 긴장은 지금도 생생하다.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서던 그 순간의 떨림. 준비한 것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지, 학생들이 지루해하지는 않을지, 온갖 걱정이 머릿속을 채웠다. 목소리도 살짝 떨렸던 것도 같다. 회사에서 수많은 발표를 해왔는데도, 학생들 앞에 서는 것은 전혀 다른 종류의 긴장이었다. 수백 명 앞에서 발표할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때의 나는 꽤나 긴장했던 듯하다. '한 학기를 내가 잘 이끌어갈 수 있을까?' 가르친다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중간고사를 치르고 나서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평소 수업시간에 집중하던 학생들이, 확실히 시험에서도 좋은 결과를 냈다는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가르치는 입장에서 직접 확인하니 느낌이 달랐다. 문득 학창 시절이 떠올랐다. 선생님들이 왜 학습 태도가 좋은 학생을 예뻐하셨는지, 이제야 그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사실은 성실함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이었구나 싶었다. 태도는 결국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을, 강단에 서고 나서야 제대로 이해하게 됐다.
내가 전달하고 싶었던 것은 교과서 속 지식이 아니었다. 회사에서 직접 부딪히고 경험했던 것들, 실제 업무에서 쓰이는 살아 있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최대한 현업과 연결된 사례를 들려주려 했고, 당장 써먹을 수 있는 것들을 전하려 애썼다. 교과서는 정답을 알려주지만, 현장은 늘 교과서 바깥에서 벌어지기 마련이니까. 내가 겪은 시행착오가 누군가에게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가르친다는 것은 결국 나의 시간을 건네는 일이었다.
수업을 한 주 한 주 거듭하면서 나 자신도 조금씩 달라졌다. 첫 시간의 그 떨림은 점차 옅어졌고, 어느새 강단이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첫 시간에는 내 농담에 아무도 안 웃으면 어쩌나 싶어 아예 시도조차 못 했는데, 몇 주가 지나자 슬쩍 던진 농담에 학생들이 웃어주기 시작했다. 여유가 생기니 비로소 학생들의 얼굴이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능숙해진다는 것은 긴장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긴장과 함께 서 있는 법을 배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기말에 학생들이 각자 발표하는 시간을 지켜보며, 나는 꽤나 뭉클해졌다. 내가 전한 것들이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소화되어 나오고 있었다. 각자의 방식대로 내가 전달한 내용을 가지고 이해하고 활용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분명 무언가 전달되었다는 것이 느껴졌다. 어떤 학생은 내가 강의 중에 지나가듯 했던 말을 자신의 발표 속에 녹여내기도 했다. 한 학기 내내 나를 괴롭히던 그 의심, 과연 잘 전달되고 있는가에 대한 답을, 그 발표 자리에서 조금은 얻은 것 같았다.
강의 후기를 확인하기 전에는 혹시 혹평이 있을까 싶어 심호흡을 한 번 했다. 배운 것들이 실제 업무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 수업 내용이 알찼다, 열정적으로 수업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등의 말들. 피드백들을 읽어보고 나서는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 짧은 문장들이 몇 달간의 고생을 한순간에 씻어주었다. 회사원으로 살면서는 좀처럼 느끼기 어려웠던 종류의 보람이었다. 누군가의 성장에 내가 작은 보탬이 되었다는 감각, 그것은 분명 전혀 다른 결의 기쁨이었다.
혹시 누군가 강의 제안을 받고, 부담스러워 고민하고 있다면 나는 일단 해보라고 강권하고 싶다. 준비 과정은 분명 힘들고,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그 끝에는 온라인 게임인으로서도, 한때 학생이었을 때도 느끼지 못했던 감정과 보람이 기다리고 있다. 밤샘의 고단함은 며칠이면 잊히지만, 그 보람은 생각보다 오래 남는다. 스트레스와 부담의 끝에 분명 큰 기쁨이 있다는 것, 그리고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길 하나가 열린다는 것을, 나는 이번 학기에 제대로 배웠다.
어설펐던 첫 학기 강의를 너그럽게 이해해 준 나의 첫 수강생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서툰 선생을 믿고 따라와 준 그들 덕분에, 나는 가르치는 사람의 기쁨을 처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부족한 강의를 끝까지 들어준 그 눈빛들을, 나는 아마 오래 기억할 것이다. 어쩌면 그 한 학기 동안 가장 많이 배운 사람은, 학생들이 아니라 나였는지도 모르겠다. 지식을 건네려 섰던 자리에서, 정작 나는 사람을 가르친다는 일의 무게와 소중한 기쁨들을 배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