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치는 일을 한다는 것

겸손, 그리고 나를 되돌아보기

byRyan Choi

'짜친다'는 것. 경상도 방언으로 쪼들리고 부대낀다는 뜻이었다는데, 요즘은 시시하고 허접하다는 쪽으로 더 많이 쓰인다고 한다. 근원이야 어떻든 무슨 뜻인지는 대충 느낌만으로도 또렷하게 알 것 같다. 사소하고, 번거롭고, 굳이 내가 해야 하나 싶은 일들. 몇 년 전 그리고 최근에도 종종 회사에서 그런 일들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었다. 팀원들에게도 선뜻 말하기 어려운, 자잘하고 궁상맞은 그런 일들이다.


처음에는 억울한 마음이었다. "내가 이런 것까지 해야 돼?" 팀장이라는 자리, 그동안 쌓아온 이력, 그만한 무게의 일을 해왔다는 오만함이 그 짜치는 일들 앞에서 자꾸 발끝을 세우게 만들었다. 이런 건 내 몫이 아니라고, 내 시간은 더 값진 데 쓰여야 한다고 속으로 항변했다. 그렇게 억울함을 오래 붙들고 있던 어느 날, 질문의 방향이 문득 나를 향해 꺾임을 느꼈다. 왜 이 일이 하필 내게까지 흘러왔을까.


사실 답은 단순했다. 좋은 리더라면 그런 일을 셋 중 하나로 만들었어야 했다. 일이 효율적으로 굴러가게 하거나, 아예 하지 않아도 되게 없애거나, 누군가 맡도록 구조를 짜두거나. 그중 어느 것도 해두지 못했기에 그 일은 마지막 사람인 내게 남았다. 내가 만들지 못한 효율, 내가 없애지 못한 불필요, 내가 넘기지 못한 위임. 그 잘못들이 한데 모여 지금 내 바카라상 위의 짜치는 일이 되고 말았다.


그러니 이건 잡무가 아니라 결국 리더십의 문제고 내 잘못이라고 나는 한동안 결론지었다. 그런데 이 깔끔한 결론에는 빠진 것이 있었다. 짜치는 일을 실제로 손에 쥐고 해 보면, 이상하게도 조금 겸허해진다는 사실이다. 나도 모르게 손에서 멀어졌던 감각, 실무자가 매일 무엇과 씨름하는지를 오랜만에 몸으로 다시 겪는다. 서류의 앞뒤가 안 맞아 몇 번씩 되짚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마무리를 하는 그 시간들에서 말이다.


그러자 처음의 억울함이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이 일을 리더십의 실패라고 불렀지만, 그 밑에는 더 단순하고 부끄러운 마음들이 숨어 있었다. 이 일은 나 말고 다른 누군가가, 그러니까 나보다 아래에 있는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 내가 하기 싫었던 그 일은, 아랫사람에게라고 하기 싫지 않았을 리 없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남도 하기 싫다는 그 당연한 사실을, 나는 오랫동안 모른 척해왔던 것 같다.


짜치는 일 앞에서 불만을 가졌던 마음의 정체는 결국 자존심이 아니었다. 이 부대낌을 누군가에게 떠넘기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리더십의 한계라는 결론은 어쩌면 그 얄팍한 마음을 가리기에 알맞은 점잖은 이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구조를 못 짠 게 문제였다고 말하면 나는 무능한 리더가 되지만, 떠넘기고 싶었던 거라고 말하면 나는 그냥 부끄러운 사람이 된다. 나는 오랫동안 앞의 문장 뒤에 숨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요즘은 그 일들을 조금 다른 마음으로 한다. 여전히 하기 싫고 여전히 자잘하지만, 하는 동안만큼은 내가 같은 땅을 밟고 있다는 걸 확인하게 된다. 짜치는 일을 없애고 위임하는 게 좋은 리더라고 배웠는데, 가끔은 어떤 짜치는 일은 내가 계속 쥐고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짜치는 일이 내게 가르친 건 리더십이 아니라, 그동안 내가 이 부끄러움을 얼마나 자주 남에게 미뤄왔는가에 대한 것일지도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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