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새로운 배움을 찾는 어른의 모습을 꿈꾸며
어떤 이슈가 나오면, 마치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듯이 그건 이런 거라며 쉽게 단정 짓고 말을 얹는 주변의 '아는 척' 달인들을 종종 마주할 때가 있다. 사실 나이가 들고 연차가 쌓일수록 아는 척하고 싶은 유혹이 쉽게 찾아오기 마련이다. 조금만 깊이 들어가면 밑천이 드러날 것을 알면서도, 그 순간의 권위나 체면을 지키고 싶어 하는 그 마음. 그런 서툰 모습들을 마주할 때마다 답답함과 안타까움을 느끼곤 한다.
그러던 차에 링크드인에서 인상 깊은 글을 하나 봤다. 대기업에서 높은 자리에 계시다가 지금은 온라인 게임인들의 멘토로 활동하시는 분의 글이었다. 멘토로 활동하다 보면 자신에게 조언을 구하고 무언가 배워가려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분은 지금도 여전히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배움을 찾고 있다고 했다. 이미 충분히 많은 경험과 지식을 갖춘 분의 배움을 멈추지 않는 그 모습이 마음속에 꽤 오랫동안 잔향으로 남았다.
"이 일을 통해 나도 한 가지 아이디어를 얻었다. 앞으로 나를 찾아와 조언을 구하는 분들에게, 나 역시 그분이 가장 잘하는 것을 하나씩 배워야겠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경험과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시니어들이 물론 경험이 많을지라도 한계가 있다. 젊은 분들에게 배울 부분도 많다. 그러니 앞으로 저를 찾아오실 분들은 고민만 가져오지 마시라.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노하우 하나도 함께 가져오시라."
비슷한 시기에 매일경제에서 본 칼럼 하나도 떠올랐다. 글쓴이가 어떤 분에게 자문을 받으러 갔는데, 오히려 그분이 글쓴이의 바카라에 밑줄을 잔뜩 그어 와서는 이것저것 물어보더라는 것이다. 가르쳐줄 위치에 있는 사람이, 오히려 새로운 것에 흥미를 느끼며 배우려는 열정을 보였다는 이야기였다. 후배들을 가르치는 자리에 있으면서도 배우는 자세를 잃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인생 고수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나 역시도 반성하게 된다. 이제 꼴랑 40대 중후반 정도밖에 안 되었는데도, 온라인 게임에서건 어떤 모임에서건 불쑥불쑥 그런 욕망이 올라올 때가 있다. "내가 좀 해봤는데, 그건 이거고, 저건 저거야." 남을 재단하고 가르치려 드는 그 마음,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이면서 생긴 일종의 관성 같은 것이다. 그런데 그 관성과 과한 자만심이야말로, 배움을 멈추게 만드는 가장 위험한 신호라는 것을 이제는 알 것도 같다.
왜 나이가 들수록 배움이 어려워지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이가 들수록 '아는 것'이 곧 그 사람의 정체성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젊을 때는 모른다고 말해도 잃을 것이 없지만, 경력이 쌓인 뒤의 '모르겠다'는 말은 마치 자신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모르는 것 앞에서도 아는 척을 하게 되고, 질문 대신 조언을 하게 된다. 결국 아는 척은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불안의 문제다.
시간이 갈수록 '앎'이라는 것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된다. 진짜 지혜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아는 데서 시작한다. 나를 비우면 지금까지 몰랐던 내가 새롭게 드러난다. 사실 아이러니하게도, 많이 아는 사람일수록 자신이 모르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잘 안다. 그렇기에 함부로 단언하거나 쉽게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채워져 있다고 믿는 그릇에는 아무것도 담을 수 없지만, 비어 있음을 아는 그릇에는 무엇이든 더 담을 수 있다.
그래서 자기가 틀리거나 모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때, 비로소 진정한 앎이 가능해진다. 무지와 오류의 가능성을 허락하지 않는 앎은, 사실 '앎'이 아니라 '고집'에 가깝다. 내가 늘 옳다는 확신은 편안하지만, 그 편안함이 나를 멈춰 세운다. 확신이 강한 사람일수록 새로운 정보 앞에서 귀를 닫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틀릴 수 있다는 겸손의 모습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강력한 원동력이 된다.
물론 배우려는 자세만으로 충분한 것은 아니다. 누군가를 가르치려 들려면, 최소한 내가 먼저 그만한 능력을 갖추는 것이 순서다. 겸손이 실력의 부재를 가리는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 배우는 자세와 실력을 키우는 노력은 함께 가야 한다. 겸손하기만 하고 실력이 없으면 공허하고, 실력만 있고 겸손이 없으면 위태롭다. 끊임없이 배우되, 그 배움을 실력으로 쌓아가는 것. 그 둘이 만날 때 비로소 한 사람이 단단해진다.
그 칼럼의 제목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닮고 싶은 어른'. 나도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경험이 있다는 이유로 남들을 무작정 가르치려 드는 어른이 아니라, 여전히 배우고 여전히 궁금해하는 어른. 생각해 보면 내가 존경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나이와 상관없이 눈빛이 살아있는 사람들이었다. 누군가 나를 보며 저렇게 나이 들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그것만으로도 굉장한 영광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새로운 것을 계속 배우고, 새로운 것을 계속 경험하는 멈추지 않는 삶. 사실 말은 쉽지만 실천은 어렵다. 나이 들수록 익숙한 것이 편하고, 아는 것을 반복하는 것에서 안전함을 느낀다. 그렇기에 편안함의 유혹을 이겨내는 것이 관건이다. 어제와 똑같은 오늘은 편할 수 있지만, 거듭된 반복은 사람을 서서히 굳어지게 만든다. 그래서 진정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완성이 아니라 계속 배우려는 태도를 유지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전부라고 할 수는 없겠으나, 내가 만난 어른들 중 많은 이들이 나이 육십만 넘더라도 마치 세상을 다 산 사람들처럼 행동했다. 대부분 자신의 전성기는 지났다고 생각하기에 하고 싶은 것이 별로 없다고 이야기했고, 미래보다는 과거를 돌아보는 데 시간을 쓰고 있었다. 하나같이 스무 살 서른 살 젊은 나를 만나면 질문을 하기보다는 조언을 하는 분들이 많았다."
오늘도 나를 다잡는다. 아는 척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올 때, 한 번 더 멈추고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들어보는 것.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 작은 것이라도 배울 것이 있다면 나이나 위치를 따지지 않고 배우는 것.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이런 작은 태도들이 쌓여 결국 한 사람을 성장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닮고 싶은 어른은 멀리 있지 않다. 바로 지금 내가 얼마나 겸손하게 배우느냐에 그 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