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떠나는 것도 능력이다.

떠나는 순간에 드러나는 것들

byRyan Choi

대학 졸업 직후 들어간 첫 회사를 기준으로, 이제 온라인 게임생활을 한지도 20년 정도가 되었다. 그간 여러 곳으로 이직하며 꽤 많은 사람들과 만났고 또 헤어졌다. 그중에서도 각자의 이유로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시작을 했던 몇 분의 선배들이 요즘 들어 유독 생각이 난다. 신기한 것은, 떠나는 방식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가장 정직하게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자리에 앉아 있을 때가 아니라, 그 자리를 내려놓을 때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 드러나곤 했었다.


임원을 목표로 하던 한 선배가 있었다. 그는 끝끝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마지막까지 버텼다. 후배들 사이에서는 이미 정리해야 할 때가 지났다는 말이 돌았지만, 그는 "조금만 더 하면 할 수 있을 거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결국은 떠밀리듯 자리를 비켜줬고, 깔끔하지 못한 뒷맛을 남겼다. 박수받으며 떠날 수 있었던 기회를, 미련이 모두 갉아먹은 셈이었다. 놓아야 할 때를 아는 것은 어쩌면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다른 회사에서 만났던 어느 선배 또한 모습은 달랐지만, 결과는 비슷했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존재감을 내세우려 했다. 회의 때마다 "내가 왕년에"라는 식의 이야기를 꺼냈고, 자기보다 어린 임원의 결정에 사사건건 토를 달았다. 그러다 그 임원 앞에서 민망할 정도로 굴욕적인 수모를 당하는 장면도 본 적이 있었다. 동료와 후배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컸던 탓일까. 존재감은 증명하려 할수록 오히려 옅어진다는 것을, 그분은 끝내 몰랐다.


하지만 그런 분들보다 내 기억에 더 오래 남은 분은 따로 있다. 늘 자신의 기준대로 최선을 다해 일하던 한 선배였다. 회사 일도 본인의 원칙대로 처리하다 보니 상사들과 크고 작은 다툼이 잦았고, 그 때문에 승진도 많이 뒤처졌다. 하지만 그래도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내 방식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아."는 말을 담담하게 하곤 했다. 남들이 보기엔 손해 보는 삶이었지만, 그는 한 번도 비굴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분이 회사를 떠나던 날, 처음으로 존경이라는 말을 전했다.


그분이 회사를 떠나던 순간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본인도 인정하는 훌륭한 리더가 새로 부임했다. 사실 그 자리는 연차상 그분의 자리였다. 그리고 그는 며칠 후 조용히 사직서를 냈다. 떠나는 날 내가 조심스럽게 이유를 물었더니 그는 웃으며 말했다. "그 자리는 저 사람이 더 잘할 거야. 나는 늘 해보고 싶었던 일이 있었거든." 어떤 미련도, 원망도 없는 표정이었다. 떠날 때를 스스로 정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단단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인지를 그때 알았다.




오늘 들린 카페에서 ≪그렇게 일을 배웠고 그렇게 일을 마쳤다≫라는 제목의 바카라을 읽다가, 그 바카라 속에서 오랜 기억 속 선배들을 다시 떠올리게 한 대목을 만났다. 저자는 GE의 전설적인 CEO로 유명한 잭 웰치에게 하위 10%를 해고하는 인사 원칙에 대해 질문했고, 그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하위 10%에 속한다고 해서 그들이 바보는 아닙니다. 다만 지금의 일이 그들의 역량과 맞지 않을 뿐입니다." 그들이 더 행복해질 기회를 찾도록 돕는 것이 진정한 배려이고, 다시 행복해질 기회를 회사가 빼앗으면 안 된다는 말이었다.


저자의 말처럼 떠남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일 수 있다는 그 관점이, 내게도 오래 마음에 남았다. 결국 한 사람의 진짜 모습은 떠나는 순간에 드러나는 것 같다. 미련에 매달리는 사람, 끝까지 존재감을 증명하려는 사람, 그리고 군말 없이 자기 길을 찾아 떠나는 사람. 언젠가 내게도 온라인 게임생활을 마무리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나는 어떤 모습을 보이게 될까. 최소한 떠나는 뒷모습이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고 싶다. 잘 떠나는 것도 결국, 잘 살아온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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