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그거 해봤어

값싼 공감이 상처가 될 때

byRyan Choi

공감은 원래 좋은 것이다. 그런데 종종 공감처럼 보이지만 실은 전혀 공감이 아닌 말들을 만나게 된다. 가장 흔한 형태가 이것이다. "나도 그거 해봤는데..." 이 짧은 문장은 어떤 자리에서는 따뜻한 위로가 되지만, 어떤 자리에서는 묘하게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다. 누가 말했느냐, 어떤 무게로 말했느냐에 따라 같은 내용이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 그리고 그 차이는 생각보다 상대방에게 진하고 분명하게 느껴진다.


얼마 전, 부끄러운 경험을 했다. 아들의 주일학교 교사 선생님과 마주 앉은자리였다. 그분은 같은 일을 10년 넘게 해 오신 베테랑이었다. 나는 예전에 주일학교 교사를 1년 정도 해본 적이 있다며 자연스럽게 그 이야기를 꺼냈고, 비슷한 어려움이 있었다는 식으로 떠들었다. 내 입장에선 빠르게 공감대를 만들어보겠다는 시도였다. 그런데 대화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며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그 장면이 계속 떠올랐다. 그분의 표정이 어딘가 살짝 김이 빠진 듯했던 것이 뒤늦게 떠올랐다. 당연한 일이었다. 1년과 10년의 무게는 같을 수가 없었다. 1년은 겨우 시작에 불과하고, 10년은 그 일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였다는 의미일 텐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같은 자리에 서려한 것이었다. 내가 무례했다. 공감하고 싶은 마음에 그만, 상대방의 경험을 너무 가볍게 만들어 버렸다.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 비슷한 실수를 한다. 누군가 자신이 이뤄낸 것을 이야기할 때, "나도 그거 해봤지"라며 자기 경험으로 자연스럽게 화제를 가져가는 사람들. 본인은 친근감을 표현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미묘하게 기분이 상한다. 내가 쌓아온 시간과 노력이, 그 한 마디로 너무 쉽게 평탄해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내 경험이 그 사람의 경험과 동급으로 정리된 듯한 묘한 불쾌함이다.


원래 공감은 상대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데서 시작하는데, 그것을 자기의 경험으로 덮어버리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공감이 아니게 된다. 진짜 공감은 나와 같다고 선언하는 데서 시작하는 아니라, 오히려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한다. 상대가 걸어온 길이 내가 짧게나마 걸어본 길과 비슷해 보일 수는 있지만, 그 시간의 깊이는 절대 같지 않을 것이다. 나의 경험과 상대방의 그것 사이에는 간극이 분명 있다.


그것을 알고 한 발 물러서서 들어주는 것. 그것이 같다고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공감이다. 그래서 '값싼 공감'은 차라리 침묵보다 못한 경우가 많다. 같다고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들어주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는 순간이 있고, 어설프게 같다고 말하는 순간 오히려 상대를 불편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내 경험을 꺼내야 할 자리와 꺼내지 말아야 할 자리를 분간하는 것. 그것을 분별하는 것이 '진짜 공감'의 시작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한 가지를 의식하려 한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때, 내 경험을 너무 빨리 꺼내지 않는 것. "나도 그래"라는 말이 입에 맴돌 때, 한 번 더 그 말이 정말 필요한지 생각해 보는 것. 함부로 같다고 말하지 않고, 상대의 시간을 그 자체로 인정해 주는 것. 진짜 공감은 같다고 말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옆에 있어주는 데 있다. 그리고 그것이 어른스러운 공감의 첫 번째 조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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